미국 친구와 한 자선단체의 기금모금 만찬에 참가한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자선기관에서 주최하는 모금만찬의 참가비는 한인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절반수준 정도다. 그러나 이 단체는 늘 상당히 화려한 만찬을 하는 편이다. 참가비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하루 저녁에 모금하는 액수도 유명한 정치인을 후원하는 수준이 될 정도로 매우 크다.
오렌지카운티에 젊은 기업인 모임의 리더인 내 친구는 한 테이블을 구입해 기업인 친구 부부들을 초청해 하루를 즐기며 자선행사를 돕는다. 친구가 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를 교육학을 전공한 교수라고 소개했다.
자식을 둔 부모는 역시 국경을 넘어서는가 보다. 엄마들은 눈을 번득이며 날 쳐다보았고 시간이 지나며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번갈아가며 내 옆에 와 앉아 자신들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못지않게 자녀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공부하는 자녀를 위해 뭔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 엄마의 말이 참 공감이 갔다.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것이다. 한참 놀고 이런 저런 경험을 직접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한 학창시절에 요즘 아이들은 너무 경쟁에 시달리며 학업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아는 백인 부모는 말을 매우 아끼는 편이었지만 대충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점점 동양인 아이들이 학교에 많아지면서 부모들이 경쟁적인 방법으로 학업 열을 올리다보니 백인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놀며 몸으로 익히는 공부 방법보다는 함께 과외까지 하며 공부를 들고 파야지만 경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푸념이었다.
어떤 것이 옳은 학습방법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미국에서는 관찰과 실습을 통한 탐구학습을 중시하고 한국에서는 암기를 통한 기초학습을 단단히 할 것을 초·중·고등학생에게 요구한다. 미국의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지만 한국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의 몫까지 공부로 한을 풀어주기를 원한다. 철없는 아이들이 아직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잘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개입이 필요하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극성을 떨어가며 공부를 강요하진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자녀의 ‘선택’의 옳고 그름을 부모의 ‘선택’과 같은 것이냐 아니냐 라는 척도로 잰다는 것과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의 전부는 공부”라는 기준에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한 공부에 목숨을 건 듯한 엄마의 치맛바람에 아이들이 치이고 다치면 아마 어느 누구도 계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치맛바람 엄마와 싸우며 자라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어른이 된 자녀들은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그들은 차세대 치맛바람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미국 엄마들이 드디어 한국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치어 함께 사교육까지 동원해 가며 교육열을 내는 것이 한국 엄마들의 승리라고 말하는 사람까지도 봤다. 한국인뿐만 아니더라도 많은 동양아이들이 의사며 변호사며 박사가 되고 악기 하나씩은 다 프로급으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렇게 부모의 적극적인 교육열로 ‘최고’의 잠재력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양 학생들의 자살률이 타 인종 학생들에 비해 높은 것이나 내가 상담을 해주는 한인 학생들 중에 부모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것이나 부모와 싸울 힘도 잃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이 방황하는 학생이 너무 많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내 아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한 명의 희생자도 너무 많다는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공부만 강조하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2세들의 미래에 대한 관심을 넓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는 여유와 기준으로 치맛바람 세계화의 전기를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김효선 교수<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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