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대통령 선서를 할 준비가 되었느냐면서 오바마를 “상원의원”으로 호칭했을 때(Are you ready to take the oath of the President, Senator?) 이미 나는 그의 비딱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과잉반응일까? 더군다나 취임식 모든 문건과 취임 행사위원장 등 모든 사람이 버락 H. 오바마 라고 호명하는데도 불구하고 선서를 시키는 그가 첫마디부터 버락 후세인 오바마 라고 미들네임을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말을 따라 복창하려던 오바마가 순간적이나마 말문이 막힌 것은 그 이유와 더불어 오바마를 기다려주지 않고 다음 문장을 외우기 시작한 로버츠의 실수와 더 큰 과실로 헌법에 나와 있는 짧은 선서문의 단어 나열을 뒤바꾸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직무를 성실하게(faithfully) 수행한다는 게 “나는 성실하게”라고 되어있음에도 로버츠는 faithfully를 맨 끝에 붙였을 뿐 아니라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라고 되어있는 것을 of 대신 to 를 사용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2005년 9월에 대법원장으로 상원에서 인준될 때 부표를 던진 22명의 상원의원들 중 하나가 오바마였다는 사실이 작용한 것일까?
그와 같은 고의성을 로버츠의 실수에 부여하는 것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 속은 모른다는 통설과도 어긋나고 그만이 알 수 있는 사항이라 정당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불과 세 줄밖에 안 되어 25초만 소요되는 그 선서문을 그가 적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바드 출신 수재로서의 자기 머리와 기억력을 믿고 그리 했다면 적어도 오만 때문에 저질러진 실수였을 것이다. 17대 대법원장으로 종신직이라서 기껏해야 8년이면 퇴임할 오바마보다 미국의 장래에 자기가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조금이라도 작용했다면 그의 대법원장 자질이 의심스럽지만 남이 알 도리가 없다.
좌우간 부통령을 선서시킨 존 폴 스티븐스 최고령 대법원 판사가 부통령 선서문을 쓴 대로 복창시킨 것과 대조가 되는 것이다.
미 헌법 수정조항 20조에 의하면 전임 대통령의 임기는 1월20일 정오에 끝나기 때문에 12시4분에 있은 어색한 선서에도 불구하고 오바마가 대통령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건만 헌법에 나와 있는 대로의 선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일에 생길 수도 있는 의문을 제거하기 위한 신중한 조치가 바로 다음날 7시30분 백악관에서 취해졌다.
로버츠가 백악관 지도실에서 오바마의 선서를 다시 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경에 손을 얹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말거리가 된다.
그것을 두고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법석을 떤다는 이야기다. 역대 대통령들 중 선서를 다시 한 사람들이 오바마까지 7명이니까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 중 4명은 1월20일이 일요일이라서 한번은 사적으로, 한번은 공적으로 한 것이라 로버츠의 실수와 견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은 암살당한 전임 대통령에 이어 자신의 집에서 했기 때문에 의사당에서 선서를 다시 했다.
다른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이 죽는 바람에 새벽 2시경에 선서를 했다가 나중에 다시 하게 되었다. 더러는 성경이 없이 선서를 했었는데 조지 워싱턴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했기 때문에 생긴 전통이지 헌법 자체에는 성경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성경 없이 선서해도 무효는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어쨌건 로버츠의 실수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잘 진행되던 취임식에 모래를 뿌린 격이었기 때문에 그의 화려한 경력에 중대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로버츠를 괴롭혀 오바마 임기 중 사직하게 된다면 미국은 또 한 번 지각변동을 보게 될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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