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전 한인회장이 전명운 의사의 동상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들고 있다.
장인환 전명운 동상 건립
오는 3월23일은 샌프란시스코 페리항에서 장인환, 전명운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한 의거가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된다.
두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한 동상 건립 운동이 1970년대 후반 이후 꿈틀대기 시작했으나 당시만해도 ‘당장 먹고 사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한인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지지부진하다 2003년 6월 김근태 100주년기념사업회 회장의 주도로 두 의사의 동상을 한인회관에 건립할 수 있게 됐다.
1977년 텍사스 휴스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김근태 전 SF한인회장은 당시 한국노인회장의 주도로 1979년 발족된 동상건립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을 맡았다.
김근태 전 회장은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난다”면서 “당시 한국노인회장은 민족관이 투철하신 분이었으며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모이라고 했다”고 당시 동상건립위원회가 발족된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한국광복회 등의 지원으로 석상을 본국에서 준비하고 운반해서 샌프란시스코에 모셔놓자는 데까지 계획이 진행됐으나 한인사회의 무관심으로 결국 무산됐다고 김 전 회장은 전했다.
일단 첫 시도는 무산됐지만 그 불씨는 완전히 꺼진게 아니었다. 김근태 전 회장이 1994년 한인회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전씨 종친회장 전봉훈씨가 한국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전봉훈 종친회장은 전명운 의사의 의거를 기려야 한다면서 한인사회에서 이렇게 동상 건립에 무심하냐며 동상 건립을 하루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동상 건립에 뜻을 모은 김근태 전 한인회장과 전봉훈 종친회장은 한인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두 의사의 의거 현장을 둘러보면서 법정 증언을 찾아냈다.
동상 건립은 2003년 이뤄졌다. 김근태 전 회장은 한국에 가서 독립기념관, 보훈처, 대한광복회 등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했고 5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원래 의도는 두 의사의 동상을 의거 현장인 샌프란시스코 페리항에 건립하는 것이었으나 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는 ‘테러범’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런 정서는 동상을 한인회관 밖에 건립하려던 계획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상을 세우면 그 밑에 두 의사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야 하는데 미국인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것을 알면 동상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동상은 회관 안에 세워졌다.
김근태 전 회장은 장인환, 전명운 두 의사의 의거는 나중에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의거에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두 의사의 의거가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한 한국인들의 정서가 한몫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젊은이들이 두 의사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두 분의 의거를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박승범 기자> sb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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