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비밀 보고서 공개
6·25전쟁 당시 북한 서해안과 동북부 산악지대 주민들이 반공 게릴라 조직을 구성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 아래 게릴라전을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과학자 연맹’(FSA)은 CIA가 올 7월 비밀 해제한 ‘비밀작전 역사’(Clandestine service history) 보고서 시리즈 가운데 ‘한국에서의 비밀 전쟁’(The secret war in Korea) 등 5건의 보고서를 최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1964년 작성된 한국전 관련 보고서는 29쪽에 걸쳐 1950년 6월~52년 6월까지의 활동 실적을 소개하고 있다.
▲ CIA 전쟁 개입=전쟁 초기 미군은 북한의 침공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전술정보 수집 계획조차 없고 예산도 삭감된 상태여서 CIA에 개입을 요청했다. CIA는 전쟁 발발 12주 만에 북한 후방에 요원들을 낙하산으로 투하시킨 것을 시작으로 2년간 수백 차례의 야간 비행을 통해 후방 침투 작전을 폈다.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비행은 대부분 성공적이었고 요원 침투 외에도 선전전단 살포, 물품 공수 등도 했다.
초기 침투 요원들의 임무는 북한과 중국 소련 국경 인근 높은 지역에 관측소를 설치, 외부로부터 지원이 이뤄지는지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10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투입된 팀 가운데 일부는 발각돼 도주하기도 했다. CIA는 투입된 팀들의 귀환율은 보고서에서 지운 채 “한국인 요원들이 적절한 훈련을 받으면 북한에서 생존하며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만 밝혔다.
CIA는 장기 계획에 따라 북한 핵심부 침투도 시도했다. 보고서는 “1951년 10월에 노동당, 인민군, MSS(소련의 비밀경찰·KGB에 해당하는 기구), 정부 기관에의 침투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적었다.
▲반공 게릴라 지원=유엔군이 38선을 넘은 1950년 10월께부터 북한 서해안 지역에서 자발적 친유엔 게릴라 운동이 전개됐다. CIA와 미8군은 1951년 초부터 북한을 동서로 나눠 게릴라전을 지원하고 통제했다. CIA는 동북부 험준한 산악지대에 이미 거점들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미군이 맡은 서해안에선 1951년 10월 기준으로 게릴라 규모가 8,000명에 달했다. 미군은 이들을 훈련 정도와 모집 배경에 따라 16개 부대로 나눴다.
그러나 평평한 섬 지형의 특성상 안전한 기지를 구축할 수 없었던 탓에 정전협정이 열리고 있던 1951~1952년 겨울 북한에 의해 소탕되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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