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와 그리스에 흩어져 있는 초대 교회의 성지들을 돌아본 것은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다녔던 그 길과 밧모 섬에 유배되었던 사도 요한의 발자취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폐허가 돼버린 초대 교회의 터전 위에서 즐거워하거나 새로울 것은 실상 없습니다. 그러나 희미한 흔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역사를 재조명하는 관점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영화와 부귀를 자랑하던 옛 도시들이 무너져 내린 옛터 위에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25)하는 메시지를 깨달았습니다.
또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줄기를 이어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과 신앙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복음을 외쳤던 2000여 년 전 이래 수많은 종교 회의가 열리고, 죽음을 불사하고 지켰던 성경의 진리가 있었기에 오늘까지 흘러내려온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전도 방법은 세속 관점에서 볼 때 미련할 정도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빌립 집사님이 순교하셔서 매장된 터전위에서, 폴리캅 목사님이 86세 때에 순교하신 그 기념교회당에서, 사도 요한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던 동굴 안에서, 사도 요한이 순교하고 매장되었던 그 무덤에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아데미 신전의 어마어마한 위용 바로 뒤편에 있는 작은 사데 교회당의 옛 터 위에서, 지하 85m까지 내려가는 땅굴 속에서 단지 믿음 하나 때문에 대를 물려가면서 숨어 살았던 테린쿠유의 지하교회에서, 환난과 핍박을 피하여 모래 바위를 손으로 파고 들어가 끝까지 신앙을 지킨 믿음의 선각자들에게서 기독교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어마어마한 부를 자랑하였던 라오디게아 지방이나 사데 지방의 부귀와 영화는 다 사라지고 잔재만 남아있지만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은 오늘도 그 성지를 통하여 우리에게 큰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배웠지만 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찬란한 예술의 유산도 다 폐허가 됐습니다. 믿음과 살아계신 진리의 말씀만이 그 속에서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찾아서, 역사 속에 살아계신 믿음의 유산을 찾아서 성지 순례를 떠나 보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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