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셴쉬니-알섹 강을 따라
(6) O’Conner 까지
폴 손/객원기자
아침에 눈을 떠서 손가락을 봤더니 부어 있었다. 결혼 반지가 부은 손가락을 나오려 하질 않았다. 손이 상당히 거칠어진 것 같았다. 수년 전, 김 영삼 당시 대통령이 상항 지역을 방문해서 가진 재미 과학자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악수를 했을 때 손이 너무 부드러웠던 것을 느꼈었다. 지금 나의 손은 혹사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말 돈주고 사서 하는 고생이었다.
일어나 다시 강가로 갔다. 빗물에 여전히 강은 불어서 거센 물결을 보였고 해는 잠시 틈난 구름 사이로 비치는 정도였다. 저 물결을 따라 오늘은 오코너 강을 만나는 지점까지 약 15마일을 내려 가야한다. 약 네시간 걸린다. 일상대로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다시 짐을 쌌다. 이날 아침은 어젯밤 먹다 남은 광어를 넣고 끓인 광어 수프였다. 이 구간 중간에는 식수를 구할 수가 없는 구간이다. 그래서 세개의 물병에다 물을 채웠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정수제를 쓰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카메라 가방에 물이 안들어갔으니 지금까지 사진 기기는 건전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두사람이 자신들이 가진 카메라를 강에 빠뜨렸다. 사진 기기에 (카메라나 플래쉬) 물이 들어가면 빨리 건져서 제일 먼저 배터리 칸의 문을 열고 배터리를 빼낸다. 이 문을 열어두고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한다. 전기가 있는 곳이면 헤어 드라이어로 약한 바람을 카메라 주위로 불어서 건조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이틀 공기중에 말린다. 성급하게 배터리를 카메라에 넣고 체크를 하지 않도록 한다. 조그만 스크루 드라이버가 있으면 카메라를 약간 열어서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한다. 카메라를 물에 빠뜨린 이 두 사람들은 삼일 후 카메라가 작동하는 행운을 가졌다. 이것은 오래 전, 요세미티 국립 공원의 버날 폭포에 젖은 플래쉬를 말린 나의 경험에 의한 충고였었다.
짐을 모두 배에 싣고 출발이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조를 이뤄서 서로 다 잘 알도록 했다. 출발하는 즉시 강물이 조금씩 튀어 배로 들어온다. 아직도 캐나다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모기들도 계속 공격을 강행하고 있었다. 미국 국경까지는 사흘을 더 가야한다고 했다. 이날까지의 경험으로는 한국에서 캐나다로 가서 이 강을 타고 미국으로 밀입국한다는 것은 안잡힌다는 일은 둘째이고 살아있으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험하고 고생스러웠다.
출발 당시 양념에 절인 양고기가 마지막날 최후의 만찬으로 쓰인다고 하니 지금도 아이스 박스에 잘 절여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모두들 배탈나지 않고 건재했다. 다시 점심을 위해 멈췄고, 마른 가지 수집이 있었다. 가끔 독수리들이 여기 저기서 보였고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태양은 빙산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접게 만들었다. 그만큼 지구 온난화 현상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오코너 강이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장기로 인해서 저녁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시간 감각을 잃은 지가 오래된 것 같았다. 마치 베드로가 변화산 상에서 하산은 잊어버리자는 생각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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