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교 역사를 살펴보면 민족이 보입니다.
한국 역사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1900년대 초 일제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 시기에도 한국인들이 어떻게 선교를 할 수 있었는지 경외감이 들 정도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을 파송하였습니다. 선교는 잘 사는 사람들이 못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편견을 불식시켰습니다. 못살던 시절에 한국 교회는 이기풍 선교사를 제주도로 파송했습니다. 해외에 최초로 한인 선교사를 파송한 곳은 중국의 산동 반도였습니다.
산동 반도는 공자와 맹자의 고향입니다. 문명이 발달하였고 중국인의 자존심이 강한 그 곳에 동쪽 오랑캐로 여겼던 한국에서 선교사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인들은 한국 선교사들을 조롱하고 멸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인 선교사들이 한자를 자신들보다 잘 쓰고 잘 읽는 것을 보고 서서히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난하였지만 그 속에 강함이 있는 민족을 보기 시작합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강해 질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선교사들을 만나기 시작한 중국인들은 그들을 강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온 이민자들이나, 멕시코 유카탄의 애니깽 농장에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태평양을 건넜던 우리 선조들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만주로, 시베리아로, 연해주로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갔던 우리 선조들은 언 땅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들이었지만 가장 강하게 살았습니다.
요즈음 한국은 여러 부문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지만 민족성은 점점 약해져 갑니다. 나라가 약했을 때 백성은 강했습니다. 나라가 강해졌는데 백성은 약해집니다. 세상 것은 없어도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이 강했습니다. 물질의 축복과 세상적인 풍요로움은 가득한데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약해져 갑니다. 이제 본질을 회복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외적인 강함보다 내적인 강함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관이 내속에 형성되어야 합니다. 내게 넘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나누어 줄 수가 있습니다. 평안이 있어 평안을 나누어주고, 소망이 있어 소망을 나누어주고, 물질이 있어 물질을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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