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선생의 동상 앞에 설 때마다 생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회고하는 박근실 할머니.
상해-순안 등서
가르침 받은 박근실 할머니
리버사이드에 거주하는 올해 97세의 박근실(미국명 루스 장) 할머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을 대할 때마다 생전의 도산 선생을 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도산 선생 생전에 몇 차례 만났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만남은 상해에서다. 1910년 원산에서 태어난 박 할머니는 평남 순안의 제7 안식일교회 부속 음영학교 재학 중 미국 선교사의 권유로 상해 위생병원 간호사 양성소로 유학을 가게 된다. 당시 이곳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 100여명이 유학 중이었으나 조선인 학생은 8명뿐 이었는데 프랑스 행정구역에 거주하던 도산 선생이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인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배움을 강조하고 단결을 호소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평생 존경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 후의 만남은 귀국 후 간호사로 서울 위생병원에 재직할 때 평남 순안병원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마침 대전에서 4년형을 마치고 풀려난 도산 선생이 순안병원에 잠시 입원했을 때다. 당시 조카딸과 동행했던 도산선생을 동료 간호사들이 합심해 근처 영육골 저수지 뱃놀이에 모셨던 적도 있었는데 간호사들은 감시가 심한 일경의 눈에 띄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지만 “시원하다”며 태연해 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 후 도산 선생이 동우회 사건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재수감 중 병이 위중해 서울대학 병원으로 옮겨 투병했지만 60세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고 회상했다.
상해 유학시절 조선인 학생들을 찾아와 “아는 것은 곧 힘이요, 뭉치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라고 말씀하고는 일경의 감시망을 피해 어디론가 급히 떠나시던 모습이 떠오를 때면 리버사이드 시민광장에 세워진 선생의 동상이 우리 민족사의 한 단면을 말해주는 것 같다”고 회고한다.
박 할머니는 6.25 동란 중 남편이 납치되는 불행 속에서도 1965년 도미, 5남매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모두 의사로 만든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며 아직도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하고 또렷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 도산 선생 생전의 모습을 생생히 전해줄 수 있었다.
한편 상해 조선인 유학생 8명 중 박 할머니를 포함해 2명만이 생존해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LA 올드타이머 최희만씨의 누님인 최옥선씨로 플로리다에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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