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흠·아델리아 백 부부가 어머니가 유언을 적어 남겨둔 편지봉투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은호 기자>
히스패닉 며느리, 24년간 한인 시어머니 극진히 모셔
시어머니 “고맙다 아가” 100달러 24장과 감사의 유서
히스패닉 며느리가 한인 시어머니와 한 집에 살며 24년을 봉양했다.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이 적었던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며 작은 봉투 하나를 남겼다. 며느리에게 전해 달라는 메모와 함께. 어머니의 유일한 유산이었다.
봉투에는 ‘소니아에게, 엄마가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는 시어머니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차곡차곡 모은 100달러짜리 24장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는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쓰여 있는 흰 봉투를 손에 쥐고 밤이 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백태흠(48)씨가 멕시코 출신의 에델리아(42·예명 소니아)씨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지난 83년의 일이다.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던 백씨는 손님으로 가게를 자주 찾던 에델리아씨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는 백씨의 마음을 에델리아씨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신혼 때부터 그렇게, 24년을 함께 살았다. 백씨는 ‘집에서는 한국말을 쓴다’는 전제를 세우고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았다. 자신이 아내와 스페인어로 의사 소통을 하게 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는 점점 멀어질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처음 2~3년은 쉽지 않았다. 에델리아씨는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고 시어머니에게서 한국 음식 요리법도 알아갔다. 남편을 돕고 싶었고 남편의 어머니와 그의 나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멕시코에 있는 어머니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멕시코 여성들도 대부분은 결혼하면 분가를 하지만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하는 것을 보고 자라서 어렵지 않았어요”
그러나 남편 백씨는 그 모든 것이 타인종 며느리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안다. “어머니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하나 같이 24년을 아무 말 없이 어머니를 모신 아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델리아씨는 오히려 “어머니는 내가 아프면 약도 주시고,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보며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다. 마음을 완전히 보여주시지 않았지만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며 결국 이렇게 마지막에 나에게‘고맙다’는 말이 담긴 편지를 선물로 남기셨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델리아씨는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아끼던 옷은 몇 벌 잘 챙겨 손질해 뒀다. 특히 내년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는 차남 알렌(21)씨의 졸업식에는 평소 어머니가 입고 가고 싶다던 옷을 자신이 대신 입고 갈 생각이다.
남편 백씨는 “요즘 세상에 내 아내 같은 사람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며 “부모님 모시고 살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델리아씨는 “어머니에게 꼭 한 마디 전할 수 있다면 영원히 사랑하고 기억하겠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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