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의 인연을 30년째 이어오고 있는 이복연 독자가 5일자 본보를 정독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일보를 이민생활의 가이드로 삼았다고 한다. <이은호 기자>
“한국일보는 이민생활 가이드 북”
“가게 앞에 배달된 한국일보를 보고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랐어요.” 본보를 수십 년째 구독하고 있는 이복연(50) 독자. 미국생활 27년 동안 신문 직배가 되지 않는 외곽 지역에서만 거주하다보니 우편으로 우송되는 신문에만 익숙해 있었다. 올해 2월 잉크 냄새 물씬 풍기는 ‘신선한’ 한국일보를 팜데일 뷰티 서플라이 가게 앞으로 배달받고는 소꿉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날 배달된 신문은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이씨와 한국일보의 인연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에서 한국일보를 구독했고, 직업전선에 나선 이씨 역시 같은 신문을 읽었다. 한국에서 맺어진 한국일보와의 인연은 미국에서도 계속됐다. 지난 1981년 주한미군 출신의 타인종 남편을 따라 도미한 이씨. 남편과 함께 정착한 첫 번째 도시는 시애틀이었다. 이씨는 우연한 기회에 본보가 미국에서도 발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즉시 구독을 신청했다.
<이복연씨의 남편 클레온 파워씨가 작은 딸 은혜(가운데)의 USC 졸업식에서 장녀 지혜(왼쪽)와 막내딸 다혜(오른쪽)양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69년 한국서 첫 구독 인연
81년 미국 와서도 이어져
혼혈 세 딸 뿌리교육
독서·대학 진학 지도 등
신문 보며 큰 도움 받아
이씨에게 한국일보는 미국생활의 길잡이였다. 신혼의 달콤한 꿈에 젖어 있던 이씨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낯설고 물선 미국 땅이 주는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런 불안감은 한국일보를 읽으며 떨쳐갔다. 한국에서 읽어오던 신문보다 기사 내용, 광고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았지만 곧 익숙해졌다.
이씨는 “당시에는 1주일에 한번 정도 신문이 우편으로 배달됐다”며 “어떤 때는 열흘 전에 발행된 신문을 받아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씨는 “그 때는 영어 공부를 하려고 굉장히 애썼다”며 “영어 공부하는데 쏟은 열정만큼이나 한국일보 기사를 정성을 들여 읽었다”고 덧붙였다.
언론학 학자들은 신문은 신속성과 정확성이란 두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기준에 맞추어 볼 때 뒤늦게 우편배달 되는 신문은 구성 요소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뉴스’ 보도의 기능이 부실했던 신문이었지만 이씨에게는 자신을 거부하는 한인사회의 실정과 같은 한인 이민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유리창이었다.
이씨의 남편 클레오 파월씨는 흑인이다. 방산업체 ‘레이손’에서 엔지니어로 근무 중인 파월씨는 용산 미군부대 내 잔디밭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는 긴 머리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인 여성이 부대 내 미용실 미용사란 사실을 알아낸 뒤 파월씨는 이발소 도 있지만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로 갔다. ‘그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했던 파월씨가 이씨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우산 작전. 비오는 날마다 우산을 사서 건네주며 “비 맞지 말고 가라”는 따뜻한 말을 잊지 않았고, 이씨는 타인종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외국 침략에 시달려온 탓인지 우리네 한민족은 국제결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
“너의 고향은 아가야/ 아메리카가 아니다./ 네 아버지가 매섭게 총을 겨누고/ 어머니를 쓰러뜨리던 질겁하던 수수밭이다./ 찢어진 옷고름만 홀로 남아 흐느끼던 논둑길이다…”
정호승의 ‘혼혈아에게’란 시는 이런 정서를 잘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까.
이씨는 결혼 허락을 받으러 파월씨를 집에도 데리고 가지 못했다. 어머니와 동네 어귀 찻집에서 잠깐 만난 것이 전부다. 주변 지인들도 극심한 반대를 했지만 이씨는 남편을 선택했다.
국제결혼 커플, 특히 흑인 남성-한인 여성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에 대한 차별은 미국에서도 계속됐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인 교회에 출석했던 이씨는 한 일요일 흑인과 혼혈아를 비하하는 목사의 설교 때문에 큰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이후 한인 교회에는 발길을 끊었다.
차별, 편견에 가슴이 아프지만 피는 물보다 진한 법. 이씨는 동족들의 사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서 접했다. 특히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취학 연령이 되면서부터는 교육 관련 기사와 칼럼은 빼놓지 않고 정독했다. 좋은 책이 권해지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대출해서 아이들에게 읽혔다. 푸드 섹션에서 소개된 조리법으로 음식을 직접 요리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먹였다. 이민생활에 가슴이 허전할 때는 한국일보 칼럼리스트들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삼았다. 신문은 은혜, 지혜, 다혜 세 딸의 뿌리교육 교재로 사용됐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주지도 시애틀에서 벤추라 카운티로, 벤추라에서 팜데일로 이사했다. 현재 뷰티 서플라이 업소를 운영하는 팜데일은 한 5년만 살겠다고 작정했는데, 이곳에 거주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씨와 남편 파월씨가 정성을 쏟았던 딸들도 이제 다 컸다. 큰 딸 은혜는 벌써 25세가 돼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딸 지혜(22)는 지난 5월 USC를 최고 우등으로 졸업하며 커뮤니케이션-시네마 학위를 딴 뒤 할리웃 영화회사에 취직했다. 막내딸 다혜(18)는 보스턴 대학에서 1년을 마치고 최근 방학을 맞아 집에 와있다. 다혜양은 UC버클리, USC, UCLA 등 언니 지혜가 합격한 학교에 모두 붙었지만 “언니를 졸졸 따라 다니기 싫다”며 보스턴 행을 선택했단다.
어느 듯 인생의 황혼기 시작을 앞두고 있는 이씨는 “미국의 가장 큰 장점은 피부 색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포용하는 포용력인 것 같다”며 “한국일보 독자들은 자신보다 차이가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배척하지 않고 껴안는 너그러움만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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