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할때 해소통로 막막

지난 23일 발생한 서라벌 식당 살인극은 삼각관계와 외도로 인한 부부간 문제가 총격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 해결 방법으로 표출됐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줬다. 부부간 관계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절망감과 극도의 배신감이 최악의 방법으로 폭발하는 이같은 사건들이 반복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민사회에서 한인 가정이 안고 있는 부부간 갈등과 문제가 언제든지 극단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가정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에 치여 하루하루 고달픈 삶
마음 터놓을 친지·친구도 부족
갈등·스트레스 폭발땐 제어못해
평소 많은 대화로 ‘비극’ 예방을

■분노조절·갈등해결력의 부재
한인 부부들의 경우 가정에서 외도와 같은 부부간 갈등이나 가족 문제에 대해 쌓여가는 분노를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익숙치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원인의 하나다.
정신상담 전문 수잔 정 박사는 “한인들은 많은 경우 분노 조절에 대해 배운 적이 없어 화를 내거나 상대방에게 말을 쏟아 붓기도 하고 신체적 폭력으로 표출하기도 한다”며 “분노를 조절하고 화를 삭히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해결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은 흘려보내는 성숙한 대처 방안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국땅에서 적응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는 이민자들의 경우 여러 가지 상황으로 궁지에 몰릴 때 소위 ‘욱’하는 성격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이민 사회의 특수성
특히 한인 남성들의 경우 영어 사용의 불편으로 인해 직업 선택의 한계를 느끼면서 한인사회에서 자신의 직업이나 경제적 능력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다. 또 경제적 성취감 저하로 어깨가 쳐진 아버지들은 자녀들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한인 남성들의 경우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던 한국을 떠나 조그만 가정폭력도 허용하지 않는 미국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부부간 갈등이 위기로 치닫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총기 소유가 가능하고 총격 범죄가 빈발하는 미국에서는 총기 사용에 대한 정확한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인들이 쉽게 방아쇠를 통한 극단적 해결 방법을 택할 수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적 네트웍의 부족
특히 한인 커뮤니티의 경우 높은 스트레스 강도에 비해 사회적 네트웍은 비교적 약한 것도 갈등의 효과적 해결이 쉽지 않은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문제나 갈등의 현명한 해결을 위해서는 친구나 가족, 동창, 친지 등의 지지그룹의 조언이 필수적이지만 이민사회에는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은 ‘마음이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OC 한인가정상담소의 수잔 이 소장은 “바쁜 이민생활에서 부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차 고갈되어 가고 스트레스는 많은데 부부 사이의 어려움이나 갈등을 함께 노력하여 해소해 나가지 못한다면 최악의 상태인 극단적인 비극까지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가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상담기관이나 전문가를 찾아 해결책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