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로포비치와 장한나. <연합>
“스승님이 내게 준‘음악의 열쇠’그 깨달음 꼭 지켜갈 것”
지난 달 27일 향년 80세로 타계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현존 최고의 음악인으로 불리던 연주자다. 음악인들은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첼리스트로 파블로 카잘스(1876~1973)와 더불어 그의 제자인 로스트로포비치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장한나의 스승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팬들에게 더욱 친숙한 그는 그러나 순탄치 않은 음악인생을 살았다.
로스트로포비치 타계 소식에
첼리스트 장한나 “허전함 밀물”
“나의 재능 인류를 위해 쓸것”
구소련의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을 자신의 별장에 숨겨준 일로 1974년 해외로 망명해야 했고 4년 뒤에는 시민권까지 박탈당했다. 1990년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 의해 복권돼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러시아로 돌아갔고, 첫 귀국 연주회에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비창’ 등을 연주해 고국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자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거리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한 것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푸틴 대통령이 3월27일 크렘린궁에서 그의 팔순 축하연을 직접 열어줄 만큼 말년에는 러시아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았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 장한나(25)는 “갑자기 허전한 느낌이 밀려온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한나는 로스트로포비치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 파리에서 4년마다 열리는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콩쿠르에 참가, 대상과 현대 음악상을 수상했는데 로스트로포비치가 무대 뒤로 장한나를 찾아가 번쩍 안아 올리면서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면서 후견인을 자처하고 나섰던 것.
장한나가 12세 때인 1996년 첫 음반을 낼 때도 로스트로포비치는 지휘를 자청했다. 장한나는 “스승님이 다른 첼리스트의 요청은 무시하고 유일하게 내 녹음만을 도왔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장한나가 15세 때 로스트로포비치는 “이제 ‘음악의 열쇠’를 너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여러 가지 충고를 던졌다. “음악적 재능은 하늘이 준 선물이니 인류를 위해 쓰도록 해라” “성장하면서 주위에서 방해하고 훼방 놓는 사람들이 많아지더라도 마음 강하게 먹고 음악 하는 것을 절대로 멈추지 마라” 등.
“나에게 있어 진정한 스승은 로스트로포비치와 미샤 마이스키 둘 뿐이었다”는 장한나는 “음악의 열쇠를 넘겨준다는 의미가 ‘나에게 바통을 넘겨줄 테니 스승을 찾지 말고 혼자서 터득해 가라’는 뜻임을 나이가 들어서 깨달았다”면서 “스승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족함이 없이 음악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