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한 병원 현대판 ‘업둥이’ 시스템 운영
버려진 아기 보호에 유럽 여러 나라 적극적
요즘은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들도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 없는 부부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울 형편이 못되는 산모들은 아이 없는 부잣집을 찾아 그 대문 앞에 아기를 갖다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명 업둥이였다.
< 카실리노병원의 ‘업둥이’요람. 아기를 버리면 응급실 벨이 울려서 의료진이 즉각 아기를 돌보게하는 시스템이다>
로마의 한 병원이 현대판 업둥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로마의 카실리노 폴리클리닉은 병원이 마련한 업둥이용 요람에 지난 17일 밤 첫 손님이 찾아왔다고 발표했다. 생후 3개월쯤 되는 사내 아기가 버려져서 신생아 병동 과장인 피에르미첼레 파오릴로 의사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이는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되는 산모들을 위해 병원측이 업둥이용 요람을 설치한 것은 지난 12월이었다. 아기 엄마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아기를 놓고 갈 수 있도록 현금인출기 부스 같은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따뜻하게 보온된 요람과 산소호흡기 등 생명구조에 필요한 설비들을 갖추었다.
아기가 요람에 버려지면 그 순간 병원 응급실의 경보가 울려서 의료진이 바로 달려가 아기를 돌볼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비슷한 구조물이 이탈리아에는 수백년 전부터 있어 왔다. 중세 로마 등지에는 수도원이나 수녀원 외벽에 아기를 버릴 수 있는 회전식 구조물이 있었다.
벽 속 회전장치 위에 나무통이 놓여 있어서 누군가가 아기를 그 속에 버리고 통을 빙그르 돌리면 수도원 안에서 아기를 받게 된 장치였다.
카실리노 병원의 요람은 여성들이 아기를 몰래 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아기의 건강까지 책임져 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21세기형 요람인 셈이다.
파오릴로 박사는 지난 2005년 7월 트럭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보고 느낀 점이 많아서 업둥이 시스템을 추진했다. 버려진 아기를 보니 깨끗하게 목욕된 상태로 춥지 않게 잘 싸여 있더라며 “산모는 아기가 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이 확실하다”고 그는 말했다.
“(아기를) 버리는 것이 사랑의 행위인 경우가 종종 있지요”
카실리노 병원이 업둥이 요람을 만든 것은 병원의 주위 환경과도 상관이 있다. 이 병원이 위치한 곳은 로마에서 대표적 빈민지역으로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아기를 버리는 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 쓰레기 처리장 같은 곳에 버려진 후 병원에 위탁된 아기가 30명. 그 와중에 생명을 잃은 아기들도 있었다.
원하지 않는 아기와 그 엄마들을 돕는 한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갓 이민 온 젊은 여성들을 주인의 노리개로 임신하곤 했던 19세기의 하녀들에 비교했다. 대개 혼자 몸으로 낯선 땅에 온 이들 이민여성은 한없이 힘없는 처지인 만큼 남자들의 유혹을 당하고 버려질 위험이 대단히 높다.
그런 여성들이 아기를 낳으면 십중팔구 버리게 되고 아기는 목숨이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카실리노병원의 포스터. “아기를 버리지 마세요! 우리한테 맡기세요”라는 내용을 각국어로 알리고 있다>
업둥이용 요람이 마련된 후 병원측은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등 각 나라 말로 된 포스터를 시내 곳곳에 붙였다. “아기를 버리지 마세요! 우리한테 맡기세요”라는 내용이다. 포스터는 아울러 외국인이건 불법 체류자건 이탈리아에 사는 모든 여성은 익명으로 진료를 받으며 병원에서 출산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불법이민자로 아기를 낳았다고 경찰에 보고하거나 국외 추방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아기를 버림으로써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현대판 업둥이 시스템은 유럽 전역에서 도입하는 추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뿐 아니라 베르가모 등 여러 다른 도시들이 유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고, 독일, 스위스, 체코 등 다른 나라들도 버려지는 아기들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업둥이 시설’ 원조는 수도원
12세기 교황 교서로 제도화
이탈리아에서 아기를 버리는 행위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기를 광장의 기둥 옆에 버리면 제삼자가 데려가 노예로 키우거나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수도원 외벽에 설치된 중세식‘업둥이 시설’>
중세 수도원 외벽의 아기 버리는 창구는 12세기 교황의 교서에 의해 제도화 한 것이었다. 당시 교황은 로마를 가로지르는 티베르 강에서 발견되는 죽은 아기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데 충격을 받고 이런 결정을 내렸었다. 1204년부터는 바티칸 바로 옆의 산토 스피리토 병원이 업둥이 받는 장치를 운영했고, 14세기 나폴리에서 버려진 아기들의 집으로 운영되던 교회 부설건물은 현재 관련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이탈리아식 아기 버리는 창구는 유럽 여러 지역으로 퍼져서 19세기 후반까지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시절 여성들이 원하지 않는 아기를 출산할 경우 신원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시행하면서 수도원의 업둥이 창구는 폐지되었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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