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리(가명)씨의 한국행을 도운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가 절단된 박씨의 왼쪽 발을 들어 보이며 탈북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효섭 기자>
“두 발을 모두 잃은 아픔을 딛고 자유를 찾았습니다”
탈북이라는 죄명 아래 모진 고문으로 두 발을 잃으면서도 사경을 넘어 자유를 찾은 박혜리(41·가명)씨. 그가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료하고 북한내 인권탄압의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1일 한국통일문화진흥회 LA지부(지부장 김도우)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박씨의 탈북기는 고난의 대장정이었다.
“앉아서는 죽을 수는 없고, 김정일이 시키는 대로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박씨가 아들과 첫 탈북에 성공한 것은 지난 2000년. 2003년 12월 한국행 시도 8일 만에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압송된 후 함경남도 강제노동단련대에 수용됐다.
체포 당시 차가운 강물에 빠진 후 시뻘겋게 부어올랐던 양발의 상태는 고문 때문에 악화됐다. 보위부원들은 ‘나라를 배반했다’며 동상으로 부어오른 박씨의 발을 쇠고챙이로 찌르고 발가락에는 족쇄를 채운 뒤 사정없이 구둣발로 짓밟는 모진 고문을 가했다. 퉁퉁 부었던 발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내렸고 보위부원들은 치료는 고사하고 “두 다리가 뭉그러져 뚝 잘라져야 다시는 남한으로 못갈 것”이라며 오히려 저주를 퍼부었다고 했다.
더 이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자 북한 당국은 나가서 곧 죽을 것이라고 짐작했는지 박씨를 감금 한 달 만에 풀어 주었다.
그러나 박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2004년 9월 박씨는 쌍 지팡이를 짚고 다시 국경을 넘었다. 상태 악화로 재 탈북 성공 4개월 만에 발목 아래 양발을 잘라내야 했다. 불구가 된 박씨는 제대로 맞지도 않는 의족을 낀 채 목발을 짚고 발을 절면서 때로는 엉금엉금 네발로 기었다. 중국, 미얀마, 라오스의 밀림 정글과 태국을 거쳐 2005년 한국에 입국했다.
현대과학 수준과는 거리가 먼 절단수술, 고난의 수천리 탈북 행군, 제대로 받지 못한 치료 때문에 허리 디스크도 발병했다. 특히 양발을 절단한 지 만 4년이 되었지만 통증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이날 기자회견 도중 박씨는 오른쪽, 왼쪽 다리를 연신 주물러댔다. “차가워서, 피가 엉켜서 그런지 쑤신다”는 박씨의 양미간은 통증 때문에 찌그러졌다.
박씨는 오는 2월5일 동부에서 전문의를 만나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한국 내 관심이 시들해서인지 탈북자 구제운동에 가장 열성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디펜스포럼이 치료비용을 떠맡았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도희윤 피랍·탈북 인권연대 대표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박씨는 “당장은 통증을 제거하고 남은 다리와 일치되는 의족만 맞추어도 소원이 없겠다”며 “북한의 참상을 꼭 미국사회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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