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한국의 언론계 간부들이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김정일이 자신도 남한 신문을 읽는다면서 “그렇지만 최근에 유행하는 말과 이상한 영어단어의 의미를 몰라 좀 답답할 때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도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의 의미에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특히 인터넷이 생긴 이후로는 새로운 용어들이 홍수를 이루어 떠다닌다. 명색이 신문기자인데도 신문을 읽으면서 “이게 무슨 뜻인가” 애매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신문기자는 직업상 신문에 보도되는 신조어는 알아야 되는데 시대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 따라가기가 힘겨울 지경이다.
작년인가 언제 “개똥녀에 시민들 비난 쏟아져”라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독자가 전화를 걸어 “요즘 한국신문에 나는 개똥녀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어왔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나도 모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신문사에 계시는 분이 신문에 등장하는 단어를 모르신다는 말입니까”라며 점잖게 한마디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개똥녀’란 개는 좋아해 데리고 다니면서도 개똥은 치우지 않는 도덕 불감증 여성을 의미한다.
요즘 한국에서 젊은이들 사이의 최고의 화제는 ‘된장녀’다. 그냥 떠돌아다니는 은어라면 무시하겠는데 SBS-TV 뉴스시간에 홍익대학의 P교수가 나와 “어린 여학생들이 혹시 된장녀로 자라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저만의 걱정일까요?”라고 시사논평을 하는데 무슨 뜻인지 머리에 와 닿지를 않았다. 어떤 신문에는 “된장녀를 통해 본 한국 젊은 여성의 실상”이라는 심리학자의 글이 실릴 정도다. 이쯤 되고 보니 된장녀라는 단어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된장녀’란 능력도 없으면서 명품을 몸에 걸치고, 남자들에게 돈을 쓰게 하는 허영에 가득 찬 여성을 뜻한다. 이와 반대되는 이미지는 ‘고추장남’이다. ‘고추장남’은 운동복 하의에 촌스런 재킷을 걸치고 배낭을 걸머진 후 취업 안내서를 끼고 다니는 구질구질한 노랭이 남성이다. 그는 외식비를 지나치게 아껴 여성에게 인기가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된장녀’ 논쟁이 뜨겁다. ‘된장녀’에 대한 남성들의 비난도 거세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남자들은 취직이 안돼 사기가 저하되어 있는데 여자들은 허영에 가득 찬 생활을 하는 것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된장남도 있다”는 여성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된장녀’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돈이 지나치게 사회 가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은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다. 젊은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TV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부터 체크한다. 이제는 신문과 TV가 여론 형성의 주인공이 아니다. 누리꾼으로 불리는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정신없이 쏟아져 신문기자도 모르는 신문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인터넷 문화 때문에 30년 전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은 한국에 가면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 비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삐딱한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네티즌들이 여론을 주도해 나가는 사회가 과연 건전한 사회인가. 올바른 네티즌 되기 캠페인이 펼쳐지지 않으면 한국사회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이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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