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구 목사는 “감옥 밖 사람도 사형수임을 잊지 말고 살라”고 말한다.
■ LA 방문한 ‘사형수 대부’ 박상구 목사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사형수는 어떤 사람이냐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언젠가는 죽게 될 사형수인 거는 마찬가지죠. 중요한 건 살아있을 때 할 수 있는 헌신을 다 하는 것입니다. 효도도 부모님 계실 때 해야지, 떠나고 나서는 아무 소용없죠. 사형수를 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박 목사가 이걸 깨달은 건 폭력조직 지존파 출신 사형수 김현양의 회개 이후다. 인육까지 먹었던 그는 잡힌 뒤 “엄마를 못 죽이고 들어와 아쉬울 뿐이다”고 말한 살인마였다. 1995년 사형집행을 당할 때 “피해 유가족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데 그걸 못해 아깝다”며 시신을 기증한 것도 김현양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간증은 끝이 없다. 박 목사가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을 지켜본 건 97년 12월30일이었다(현재 한국에는 59명이 사형을 언도 받았지만, 98년 이후 사형집행은 보류되고 있다).
마약조직 폭력배로 살인을 저지른 신모씨는 교화를 거부하며 감옥에서도 온갖 나쁜 짓은 다 저질렀다. 사형장에서 신씨 앞에 기도하기 위해 섰던 박 목사는 그날 따라 말 대신 울음이 터졌다. 신씨가 박 목사를 오히려 위로했다. 신씨는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데 왜 우세요. 용기를 주세요”라며 “아직도 믿지 않는 검사님이나 교도관님 계시면 꼭 믿으셔서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전도하고 눈을 감았다.
잔인한 폭력성을 가진 사람 앞에 나서는 게 무섭지 않을까. 박 목사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신 양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폭력이 너무 심해 손발이 다 묶인 채로 마주 앉았던 사형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사형 집행을 보고 나면 열흘씩 못 먹고 누워지낸다. “변화된 뒤 천진난만하게 생활하던 사형수 형제가 없어지면 간이 부어 아파서 두꺼운 베개를 대고 눕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안 죽고 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을병에 걸려야 믿음에 다급함이 생기죠. 그런데 사형수는 언제 죽을지 몰라 오히려 믿음에 더 빨리 다가갑니다. 우리도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다 사형수라는 바로 오실 주님을 만날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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