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일본인들이 미국에 몰려온 적이 있다. 수십년간의 장기 호황과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가지고 미국 부동산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프 코스’의 하나로 손꼽히는 페블비치는 부동산 재벌 이스타니 미노루의 손에 넘어갔고 뉴욕을 대표하는 명물 록펠러 센터는 미쓰비시 자회사가 인수했다. LA 다운타운의 고층빌딩은 모조리 일본인 소유가 되고 이러다가 미국 전체가 일본 땅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것도 이 때다.
그러나 수년 후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페블비치 골프 코스를 8억5,000만 달러에 사들였던 이스타니는 불과 2년 후 이를 5억달러에 다른 일본 회사에 팔아 넘겼으며 이는 다시 수년 후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포함한 미국인 투자그룹의 손으로 돌아왔다. 록펠러 센터 역시 너무 비싸게 사는 바람에 운영이 안돼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었으며 나중에 미국인 투자그룹이 헐값에 사들이고 말았다. 한 때 기세 좋게 미국을 점령할 것 같았던 일본인들은 섣불리 미국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부동산에 관한 한 미국이 한 수 위’라는 소리만 듣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들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몰려든다는 소식이다. 최근 월스트릿 저널은 한국 투자자금이 미국 부동산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맨해턴 인근 뉴저지의 344유닛 콘도의 경우 구매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며 이들 중 절반은 전액을 현찰로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에 따르면 뉴욕 인근의 고급 콘도를 한국인들이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바람에 미국 브로커들은 요즘 간단한 인사 말은 한국어로 하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인들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결정을 내렸다기보다는 국내 사정에 기인한 바 크다. 한국 정부는 종부세와 고급 아파트에 대한 중과세 등을 통해 부동산 투기를 잡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넘치는 달러로 인한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해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로 얻어진 수익에 대해서는 국내 부동산에 관한 높은 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국내 재산을 해외로 반출하고 싶고 중과세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해외 부동산 투자 세미나가 열리면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리고 한 해외 투자클럽 회원 수는 연초 1,000명에서 이제 6,000명 선을 넘어섰다.
이와 때맞춰 미 부동산 경기의 둔화 조짐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남가주에서 가장 먼저, 가장 뜨겁게 끓어오르던 샌디에고 주택 시장은 급속히 식고 있다. ‘남가주 주택 시장의 풍향계’로 불리는 샌디에고 6월 중간 주택가는 전년에 비해 1% 떨어졌다. 이곳 집 값이 전년에 비해 떨어진 것은 10년래 처음이다. 신축 주택의 경우는 낙폭이 더 커서 작년보다 8%나 내려갔다. 이와 함께 모기지 체납률은 60%나 증가했다. 내년 금리가 상향조정될 변동 모기지 총액이 2조달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더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한국인의 미국 부동산 투자 열풍이 식어 가는 경기를 회복시켜 주리라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80년대 말 일본의 미 부동산 투자는 지금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90년대 초의 부동산 침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이런 ‘묻지마’식 투자는 경기가 정점을 지났다는 신호로 보는 것이 옳다.
“세계 부동산 경기가 뚜렷한 하락세로 접어들었으며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인 중국과 미국 부동산 가격이 동시에 하락할 경우 세계 경제는 불황을 경험할 것”이란 모건 스탠리의 경고를 허술히 듣지 말자.
kyumin@koreatimes.com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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