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숭 목사(콘트라코스타장로교회 담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시작 없는 끝은 없고 끝없는 시작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특별히 기독교적 사관은 환원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는 동양철학의 입장과는 달리 ‘선적’(linear)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사관 속의 사람들은,한번 지나간 시점은 되돌아오지 않으며, 그러기에 그 현재적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산다. 그의 그 현재는 ‘새로운 시작’일 수 있음과 동시에‘마지막 종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놓고 좀 어려운 말로는(신학적 표현으로는) 종말론적 역사관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 자신이 기독교인 된 것에 무척 감사를 느끼고 사는 사람이다. 그 감사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종말론적 사관의 소유 때문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마지막’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랄까? 인적으로는 죽음이, 일반적으로는 지구적 종말이 바로 그것일 게다.솔직히 어느 누가 감히 그 엄존하는 마지막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신이 있을까? 안 그런 척 하며 태연해지기에는 도저히 무시하기 힘든 게 바로 종말의 엄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종말과, 그 종말을 향해 가는 나의 현재적 실존의 삶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성경이 내 곁에 있어준 것이 무척 감사하다.
그런데 약 1년 전, 그 해결된 ‘마지막’ 문제뿐만 아니라, 그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이뤄지는 나의 현재적 시간관을 더 확고하게 해주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마르바 던의 ‘안식’이라는 책이다. 그 안에 많은 다른 논의들이 있었지만, 난 거기에서 나를 뒤흔든 짤막한 표현 하나를 발견했다. “공간 속에서 살지 말고 시간 속에서 살자”는 표현이었다. 이 말이 너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그동안 나의 삶의 주무대가 주로 공간이었다는 반성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교회, 내 사무실, 사람들과 대면하는 자리, 내 집, 내 방, 화장실, 부엌,쇼핑몰, 그 외의 많은 공간들, 난 그 속에서, 거기에 속해있는 물건들, 색깔들,모습들로 인해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왔다 갔다 하며 나의 가치들을 창조해 나갔던 것이다. 무슨 가구로 거기를 채울 것인가, 어떤 차를 탈것인가, 이 사람을 만날 때는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디자인과 성능의 핸드폰을 살 것인가,어느 집 가봤더니 화장실 바닥에 이런 대리석을 깔았더라, 그래서 우리 집도 그렇게 해보자… 물론 이런 것들 자체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으나, 그런 식으로 철저하게 공간의 지배만 받고 살았던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들에 취해 사는 가운데 나의 시간은 그런 나와 상관없이 무척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도전이 찾아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난 그동안 시간 속에서 살지 않았었구나!”
오늘로 나의 한국일보 칼럼 사역을 마치고자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했는데, 첫 글을 낸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으나 알고 보니 벌써 2년이 넘어서버렸다. 2004년 1월에 첫 글을 낸 후, 몇 주마다 신문 지면에 한번씩 끼어들었던 게 오늘로 서른여섯 번째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내 인생의 시간적흐름 속에서, 이 기간이 내게 차지했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언젠가 내게 찾아올 그 마지막 점에 이르기까지, 2년간 서른여섯 번의 글을 내기 위해 컴퓨터 자판기 앞에서 의미 있는 고뇌를 했던 순간들의 소중함이랄까?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날들이었다. 소중한 순간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독자들과 함께했던 그 소중한 순간들, 내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다른 시간 속에서, 이제부터 난 또 다른 소중한 일들을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시간 속에서 더 잘 살기 위한 내 삶의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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