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이 40 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사람은 20대의 얼굴이 다르고 40대의 얼굴이 다르다. 변함이 없다면, 이는 어딘가가 잘못된 얼굴이 분명하다. 굴곡이 없는 인생은 자라지 못한 나무처럼 추레할 수 밖에 없다. 흔히 남성은 돈, 여성은 외모라고 한다. 그러나 미모와 지성미를 갖춘 여성이 더 멋져 보이듯 기왕이면 남성이라도 힘(권력)만있는 것 보다는 역시 어딘가 외모를 갖춘 남성이 멋져보인다. 물론 여기서 외모란 조각같은 외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이나 개성을 의미한다할 것이다. 특히 개성이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흡인력과 카리스마가 있다. 개성있는 외모는 그러기에 힘이나 미모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평범한 외모의 주인공들이 남성편력이나 여성편력으로 유명했던 경우를 숫하게 볼 수 있다. 조르드 상드, 프리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개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성과 감성의 균형잡힌 인격에서 오는 것이리라. 특히 당당하고 초월적인 의지를 가진 자들은 개성이 넘쳐 보인다. 편협된 자아보다는 폭넓은 세계를 가진 자… 우주적인 법칙에 자신을 객관화 시키는 자들이 개성있는 인격들이다.
역사속에서 가장 개성있는 얼굴의 주인공들은 누가 있을까? 고호, 렘블란트 등은 초상화를 많이 그렸지만 미술가는 미술가의 얼굴이 있고, 철학자는 철학자의 얼굴이 있다. 어딘가 지성적인 키에르케고르의 얼굴, 예지로 뭉쳐진 니체의 얼굴, 개성있는 문학도 카프카의 얼굴…. 음악가 중에는 베토벤의 얼굴이 대표적이겠지만 예지로 뭉쳐진 북극의 작곡가 시벨리우스도 빠질 수 없다. 시벨리우스는 결코 멋지다거나 미남은 아니었다. 굳은 표정, 강인한 턱선은 마치 독재자나 나치의 한 인물처럼 보인다. 결코 호감이 가는 인상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 특히 시각으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한계적인가를 시벨리우스는 그의 신비로운 음색으로 대변하고 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남성적이다. 왕도가 느껴진다고나할까, 톤이 두텁고도 서늘한 것이 이지적이고도 자존심이 느껴진다. 아마도 북극의 추운 환경탓이리라. 아니 북극만이 줄수 있는 눈나라의 신비 탓이리라. 어떻게 지구상에서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이같은 상상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눈나라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눈의 속삭임…, 북극의 아픔, 그 고독의 언어였다.
시벨리우스(교향곡)를 들을 때마다 바다가 연상되곤 한다. 언젠가 바다에 나가 음악을 듣는 버릇이 있었는 데 망망대해의 절벽… 파도와 함께 띄워보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고독이 아니라 아픔이었다. 고독이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인간이 살아있고,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인가… 산다는 것은 파도의 파편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이다. 눈부신 광명… 얼어붙은 선율… 고독의 몸부림… 존재의 서글픔… 인간은 절망을 느낄 수 없는 것, 절망이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파도치는 선율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빛을 잉태하고 있었던가… 되돌아옴 없는 공허… 공허 속의 홀로서기… 남성적인 포기… 그 고독…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너무도 자연속에 동화되어 있기에, 그 아름다움으로 상처받은 절망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특히 심포니 1번은 시벨리우스의 초기를 대표하는 명곡이다. 4악장으로 되어 있는 데 출발부터 다른 교향곡과는 다르다. 소나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푸가나 형식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인간이 얼마나 자연속에서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인가를… 순교자적인 자세로 그리고 있다.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눈보라로 시작하여 눈보라로 끝나지만 그 속에는 피안의 평화… 자연과 동화되려는 거룩한 투쟁이 있다. 다소 어두운 면이 시벨리우스판 ‘비창’이라고나할까… 그러나 ‘비창’이 차이코프스키의 말년의 작품이라면 시벨리우스의 1번은 처녀 교향곡이었다. 그만큼 살아있고, 하나의 음악이라기 보다는 영혼으로 부딪쳐 만든, 말 그대로 작곡가의 영과 혼이 담겨진 작품이었다. 2악장도 신비롭지만 특히 4악장은 북극의 진한 눈보라, 격정이 느껴지는 가장 멋진 작품이다.
음악이 철학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음악만의 고독한 그림자 때문이다. 음악은 자기만의 세계이다. 선험적인 체험이다. 그러기에 음악은 꿈의 공간을 넓게 하고 폭넓은 인격을 가꾸어 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개성있는 친구, 고독한 신비의 나라… 서늘한 시벨리우스(심포니)의 세계로 빠져보자.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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