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2악장)을 듣고 있으면 갑자기 현실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별세계에 도달한 착각에 빠지곤한다. 어른의 세계에서 갑자기 어린이의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라고나할까. 감정이 순수해지고 무한한 추억이 솟아오르곤 하는데 아마도 향수를 일으키는 진한 멜로디 때문일것이다. 사람을 가리켜 흔히 방랑적(노스텔지어) 존재, 그리움의 존재라고한다. 현실은 늘 그리움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아무리 안락한 환경이라도 인간은 늘 그리움으로 방황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과연 어디에서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일까. 먼 우주… 항성어딘엔가는 정말 인간이 언젠가는 살았던… 고향같은 곳이 있기나하는 것일까.
외할머니 집 가는 길은 부엉이 울고 숲이 우거진… 외진 산골마을이었다. 큰 산을 하나 넘어서 감나무 사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완행 열차에서 내려서 할머니댁에 가는 길은 마치 별천지를 가는 듯 했다. 역에 부터 위압적으로 가로 막고 있는 거대한 산이 마치 짐승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고, 산 정상에서 바라본 세계는 마치 동화처럼 아늑하면서도 아름다왔다.
마을은 밥짓는 연기… 어스름한 저녁 속에 묻혀 있었고 쾌적한 여름공기는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 평화에 싸여있었다. 할머니가 반겼고, 돼지도 꿀꿀 반겼다. 초가집은 방 2개, 부엌, 헛간이 전부였다. 대나무를 엮은 울타리가 있었고, 울타리 사이로는 왕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잠자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고, 마당에는 장닭이 깃털을 과시하며 모이를 쪼고 있었다.
시골에서의 한 달은 마치 하루 같기도 했고 십년 같기도 했다. 자연과 나와의 구별이 없는, 하나되는 하모니였다. 토끼들에게 풀을 먹이고, 소몰이 가고, 온갖 벌레우는 자연속에서 메뚜기와 뛰놀고 함께 뒹굴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뭐든지 단순했다. 점심은 보리밥, 풋고추, 저녁은 감자국, 상치였다. 낮에는 시골애들과 물장구 치고, 소몰이터에서는 닭싸움을 했다. 풀독이 올라 다리가 짓물러지고 먹을 것이라곤 없었으나 산딸기도 따먹고 메뚜기도 구워먹었다.
그 평화스러운 정경이 이제는 없다. 찾아 갈래야 갈 수도 수도 없다. 고추 잠자리가 날아다니던… 그 아늑한 정경은 도적처럼 왔다가 사라져 버린… 이제는 추억일 뿐이지만, 고향(시골)이 없는 나에겐 영원한 고향, 향수의 모체였다. 행복이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왔다가 사라져버리는… 훗날의 그리움일런지도 모른다. 드보르작이라고 하는 작곡가는 신세계(미국)가 있었기에 그리움을 잉태할 수 있었던, 감성의 작곡가였다. 신세계에서의 풍족한 물질 보다는 지독한 상실감, 아픔을 느꼈다. 고독과 향수를 참을 수 없었던 드보르작은 고향 보헤미야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아이오와의 스필빌이라는 곳에서 요양하게 되었는데, 이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신세계 교향곡이었다. 널리 알려진 2악장 라르고(꿈속의 고향)는 장중하고도 느린 속도로 드보르작의 향수를 반영하고 있는데, 서구 선율도, 보헤미안 선율도 아닌, 그렇다고 인디언 민요나 흑인 영가라고도 말할 수 없는 모든 요소가 배합하여 동서양을 막논하는, 범 인류적 향수를 느끼게 하는 대작이 탄생했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은 베토벤의 전원(교향곡)과 더불어 청소년 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작품중에 하나였다. 바로 2악장 라르고 때문이다. 어렵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음악. 바로 그런 작품이 신세계였다. 그러기에 흔히 신세계의 드보르작을 가장 건강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작곡가라고도 한다. 드보르작의 신세계는 1893년 작곡, 뉴욕 필하모니에 의해 초연됐는데 인디안 민요와 흑인 영가가 가미되었다고 하여 ‘신세계’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드보르작 자신은 순미국적인 멜로디라는 평에는 동의하지 않았고, 다만 미국적인 멜로디에 인상받아 작곡한 작품일 뿐이라고 정정했다.
이때문인지 ‘신세계(교향곡 9번)’는 가장 독창적인, 드보르작의 대표작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그저 8번(교향곡)이 진일보한 작품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대단한 어떤 철학을 표출함도 아니고 스메타나(나의 조국)처럼 어떤 투쟁적 민족주의를 표현한 작품도 아니다. 그저 듣기에 좋고, 경쾌하고 향수를 느끼게하는 작품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세계’는 2악장 라르고라고 하는 그 어떤 작곡가도 창출해 내지 못한 위대한 멜로디가 담겨져 있다. 교향악사상 ‘운명’이나 ‘미완성’과 더불어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꿈속의 고향’이라고도 널리 알려진 ‘라르고’는 새삼 설명이 필요없다. 이것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가 빠져들어갈 수 밖에 없는… 본능적 그리움을 가장 간결하게 그리고 있는, 애수의 대명사적인 작품이었다.
마치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석양을 보는 듯한 쓸쓸함이라고나할까… 광활하면서도 고적한 향수가 몰아오는 데… 뼈속깊은 고독이 오히려 승화의 위로를 안기며 무한한 광명으로 이끌어간다, 아마도 모든 음악이 그렇듯 꿈으로의 여행… 방황과 향수때문일 것이다. 꿈(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가진게 없는 사람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청포도 익어가는… 그리움과 환상의 모체이다. 고향이 없는 마음은 싸늘한 시체일뿐…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우리를 신세계로 몰고 왔을까… ‘반딧불찾아 헤매이던 곳…’ 드보르작의 ‘신세계(2악장)’를 들으며 고향을 추억해 보자.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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