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렀던가. 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을 만나는 곳. 전자동이 되버린 순간 판단과 24시간 마라톤이 계속되는 곳. 슬픔과 기쁨이 늘 공존하고 삶의 추는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알 수 없는 이곳에서 참 오랫동안, 숨막히게 뛰어 다녔다.
점점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가 드는 것에 비례한 환자의 체중이라든지 기구의 무게 등등 물리적인 힘의 역부족이었지만. 거기에 덧붙어 심리적인 상실감도 커다란 한몫을 했다.
달포전 성당에서 가깝게 지내던 형제님이 교통사고로 중환자 실에 들어왔고 그분을 간호하면서 느꼈던 나의 무력감.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상태의 형제님은 중환자실에서 열흘쯤 머물다 재활 병동으로 옮겨가셨다. 신도 아니면서 신을 닮은 놀음에 너무 탐닉되어 있었던 것 은 아닌가 자성해 보는 시간이었다. 인력과 의학으로 안되는 것은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환자 실에서 근무하는 우리들은, 아니 나는 뭐든지 고칠 수 있는 양 뛰어다녔다.
결론이 여기에 이르자 무력감과 자괴감은 점점 더 해갔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아직 명퇴나 조퇴를 하기에는 이르고 물리적인 힘을 덜 드리며 할 수 있는 다른 것은 없는지 살피게 되었다. 기왕 자리를 옮길 것이면 한인 커뮤니티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
지난주 인터뷰에서 10명의 패널 앞에서 그래도 내 의견을 충분히 말했나보다. 다음 주부터 자릴 옮긴다. 이름하여 케이스 매니저. 내게 새롭게 맡겨진 임무는 병동 환자들의 상태를 일일이 살피고 입원에서부터 퇴원까지 말 그대로 매니지먼트를 해 주는 것이다.
병상에서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간호에서 떠나 환자 전체를 큰 그림으로 보는 것. 또한 일반 간호사의 어려운 점을 챙기고 환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불편함이나, 보호자들의 어려운 점, 보험관계, 여러 의사들과의 상호협조는 물론 환자들의 퇴원 후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까지를 미리 챙겨 주는 것이다.
이 자리는 반은 간호사로, 반은 소셜 워커다. 지역사회 자원을 찾고 정부의 혜택도 잘 살펴보고 퇴원 후까지 살펴야만 또 다시 입원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역할을 한인 커뮤니티에도 충분히 홍보하여 지역사회에서 잠자고 있는 리소스를 십분 이용해 볼 모양이다.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련다.
전지은
간호사
국제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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