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4세인 한 노인이 노인아파트 벤치에 혼자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다. <신효섭 기자>
집중취재 ■ 홀로 사는 노인들
자식 부담될까 외로워도 내색못하고
말동무 세상 뜨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미국생활 짧을수록 정붙이기 힘들어
“올 겨울에는 손주들이 더 자주 오면 좋겠어” 노인들은 외롭다. 특히 노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더 그렇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살다 두 달 전 LA 한인타운의 한 노인아파트에 입주한 이 모(74)씨.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 즈음 아파트 앞 벤치에서 혼자 라디오를 듣던 이씨는 “자녀들이 잘 해주지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나왔는데 만만치 않네”라며 노인아파트 새내기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황혼에 친구 사귄다고 남에게 다가가는 게 쑥스러웠지만 복도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반갑게 인사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텃세 같기도 하고 새로 왔다고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우리 아파트 왕따예요.”
건강정보센터를 찾았지만 그 곳도 만만치 않았다. 그 곳에서 일흔 네 살은 노인 행세를 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었다. 80대 어른들이 나이가 적다고 이씨를 낮게 보고 막 대해 정을 붙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나는 마누라가 있으니 지낼 만 하다”고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실제로 배우자와 사별해 혼자 사는 노인들의 외로움은 깊고 크다.
타운 내 또 다른 노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 모(71)씨는 “딸이 자주 오지만 노인아파트 생활은 외롭고 적적한 게 사실이에요”라며 “혼자 살면 주로 앞집이나 옆집 할머니끼리 말동무를 하며 서로 의지하는데, 그런 친구가 세상을 뜨면 많이 침체되고 심하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며 짧은 한숨을 내쉰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심재봉(86)·승옥(82) 부부도 “우리야 서로 의지하지만 혼자 사는 분들은 많이 외롭다”며 “특히 영어가 서툴고 미국생활 기간이 짧은 분들이 더 어려워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독거 노인 소외문제의 심각성에 의견을 같이한다.
맥아더팍 노인아파트 소셜워커인 토마스 오씨는 “외부와 왕래가 별로 없는 노인이 집안에서 갑자기 돌아가시면 3∼4일이 지나도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그래도 한인 노인들은 비교적 자녀들의 방문이 잦고 교회 생활 등으로 타민족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자녀들의 따뜻한 전화 한 통, 방문 한 번이다.
한인타운 연장자센터 박창형 소장은 “한인 연장자들이 가장 많이 여가를 보내는 곳이 병원인데 대다수 병원이 그들을 인격체가 아닌 돈으로 생각하는 걸 연장자들도 알고 있다”며 “사회와 자녀들의 따뜻한 관심이 절실하다”고 아쉬워한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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