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해리는 아프리카 밀림에 사냥 왔다가 오른쪽 다리가 가시에 찔리게 된다. 상처가 썩어 들어가는 동안 죽음이 가까이 가슴을 누르고 온몸에 숨결처럼 다가옴을 느낀다.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일컬어지며 1만9,710 피트 서쪽 정상을 ‘신의 집’이라 부른다. 그 바로 밑에 표범의 시체가 말라 얼어붙어 있다. 아무도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로 시작되는 ‘킬리만자로의 눈’을 다시 펼쳐 읽게 된 것은 한 장의 엽서때문이었다.
탄자니아의 우표가 붙어있고 하이에나가 쓰러져 있는 고목이 덤불 위에 서 있다. 하얀 눈이 킬리만자로 꼭대기에서 빛난다. 위싱턴주 올림피아의 나의 오랜 친구는 우리 동기가 살고 있는 탄자니아를 방문하여 아들과 함께 사파리도 즐기고 고등학교 때부터 늘 신비로움을 품어오던 킬리만자로를 드디어 정복하고야 말았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다기보다 정신적으로 어려웠던 모양이다. 회갑기념이란다. 이제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는 말을 덧붙인 조그만 그 엽서. 친구가 이뤄낸 성취감, 오랜 계획의 결실, 산을 오르려는 뜨거운 열정이 불꽃처럼 내 마음에 확 지펴져 전해왔다. 큰 갈채를 보내며 나의 남은 삶도 새로이 그렇게 수놓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너울너울 춤춘다.
주인공 헤리는 돈이 많은 여자를 만나고 또 버리고 다음 여자에게로 옮겨가며 술 마시고 도박하고 탕진하는 안이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쉽게 뛰쳐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괴로워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죽음의 자유로운 비행기를 타고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덮여있는 흰눈을 보고야 그것이 바로 자기가 죽어서 가야 할 곳임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서 해내지 못했던 미완에서 도달하게 되는 이상향이랄까.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다. 정작 해야 할 학구적인 노력이나 글쓰는 공부를 뒤로 제쳐놓고 비디오와 TV를 즐기는 게으른 내 모습도 해리와 다를 게 무엇일까.
헤밍웨이는 1899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61년 아이다호의 케침에 있는 통나무 캐빈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건강을 잃어 기억력이 쇠약해지고 더 이상 작품을 쓸 수 없음을 알았다. 사냥, 고기잡이, 사격, 전쟁에 실제로 참전했고 부상도 당했다. 우리는 그를 행동하는 인간, 자신감과 권위를 지닌 남자로 기억하지만 실제로 그는 부끄러움 타고 좌절을 잘 하는 면도 있었다. 지적으로 뛰어났고 교육도 잘 받았다.
하얀 만년설을 머리에 드리운 킬리만자로의 엽서 위로 해리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흔들흔들 떠오른다. 헤밍웨이의 구레나룻 수염의 얼굴도 함께 어른거리며.
안순희/하시엔다 하이츠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