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에 드러난 도청실태
최대 3,600회선까지 접속… 3년간 수만건 도청한 듯
국정원이 전담 부서를 만들어 24시간 내내 상시 도청해온 사실이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의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
국정원은 1996년 디지털 휴대폰이 상용화되자 기존 아날로그 휴대폰 감청장비를 대체할 새 장비 개발에 들어갔다. 국정원 8국(과학보안국)은 휴대폰도 유선구간에서 감청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 98년 5월 이동통신회사의 기지국과 전화국 연결구간을 감청하는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 1세트를 개발했다.
국정원은 성능을 보완해 이듬해 9월 5세트를 추가 제작했으며, 이를 R2 수집팀에 설치한 후 광화문전화국 등 6개 전화국과 연결했다. 검찰은 6세트로 최대 120회선 접속이 가능하다는 국정원 발표와 달리, 3,600회선까지 접속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도청은 철저한 분업체제로 이뤄졌다. 8국 산하 종합운영과 직원들은 정치인, 경제인, 고위공직자 등 주요인사의 전화번호를 R2에 입력했고, R2 수집팀은 2개팀 8개조 32명이 3교대로 24시간 도청했다. 하루 수십 건씩 도청한 뒤 그 가운데 10여건을 문서로 정리했다.
종합처리과 직원들은 이를 대화체 형식으로 요약, 7~8건의 통화내용을 종합처리과장, 8국장 등을 거쳐 매일 아침 김 전 차장에게 보고했다. 검찰은 이 같은 통신첩보가 국정원장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6세트가 가동된 기간(1999년 9월~2002년 3월)을 감안할 때 도청 건수는 수만 건에 달하며, 같은 인물을 중복 도청했더라도 최소 수천 건을 도청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우에 따라 한 인물의 통화내용을 수년간 도청했을 수도 있다. 검찰이 공소장에 밝힌 도청 사례 중 최규선씨의 경우는 2000년 10월말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년 넘게 도청을 당했다.
국정원은 99년 12월 R2와 별도로 ‘이동식 휴대폰 감청장비(CAS)’ 20세트를 제작했다. CAS는 승용차에 탑재, 200m 거리 안에서 휴대폰 통화자의 통화 내용을 감청하는 것으로,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것을 제외하고 2001년 4월까지 60~70차례 사용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경우도 국정원 직원이 현장에서 임의로 휴대폰 번호를 입력할 수 있어 마구잡이식 도청이 가능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