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아시아 야구선수권 우승 직후 동대문구장에서 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야구 역사 산 증인 허곤씨 스토리 <끝>
제1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이후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야구장 근대화와 우수한 재일교포 선수 초청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허곤은 야구협회 임원으로 제 2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1955년 백호기대회 창설, 1963년 제5회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서울 유치, 1965년 한국대학선발팀 일본 전지훈련, 1979년 한국야구 대제전 고교 O.B전, 이영민 타격상 제정 등이 한국야구사에 그가 남긴 족적이다.
허곤의 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1961년 대만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 야구선구권 대회라고 회상한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올렸고, 섭외임원이었던 그는 한국일보에 기사를 송고하는 등 특파원 역할도 했다.
허곤은 “최고의 대회였는데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 당시 대표선수였던 백인천이 일본 프로야구단과 계약한 사실이 발표돼 귀국 전야에 모든 선수들이 감독에게 취조를 받는 대소동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공군장교였던 그는 야구협회 임원을 겸하면서 선수로도 활약했으며 1958년 서울동대문 야구장 확장개축 공사후 첫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야구계 팔방미인이었던 허곤은 1981년 미국에 이민왔으며 야구협회 명예회장으로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의헌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