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대 유학생의 뉴올리언스 탈출기
▶ 카트리나로 거처 잃고 긴급 대피 시카고로
허리케인이 올라오고 있으니 빨리 뉴올리언스를 떠나라는 강제 대피 명령을 신승식(32)씨가 받은 것은 지난 8월 27일(토) 저녁이었다. 뉴올리언스는 매년 이맘때마다 허리케인 대피령이 내리는 지역이라 이때까지만 해도 신씨는 한 이틀정도만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뉴올리언스에 소재한 툴레인(Tulane)대학 로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신씨는 이번 대피령은 예년과 달리 허리케인 소식이 알려진지 이틀만에 갑자기 내려진 터라 간단한 옷 몇벌과 내의 몇장 그리고 랩탑 컴퓨터 정도만 챙겨서 집을 나서게 된다. 강제 대피령이 내린 뉴올리언스시는 이미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일부 대형 마트는 직원들도 대피하느라 벌써 문을 닫은 상태였고, 아직 문을 연 곳에서는 간단한 식량과 물을 사려는 사람들이 떨어져 가는 물품을 놓고 서로 가져가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주유소 앞에는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이미 갖고 있던 물량이 바닥나서 문을 닫은 곳도 수두룩했다. 신씨와 그의 룸메이트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차를 몰아 출발할 수 있었던 시간은 다음날인 28일 새벽 3시. 한꺼번에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몰려 꽉 막힌 도로 사정으로 인해 시 당국에서 반대 차선 중 일부를 열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5시간 정도 걸리던 거리가 9시간 넘게 걸렸다. 휴스턴에도 대피자들이 몰려 숙박시설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신씨 일행은 새로 지어 아직 문을 열지도 않은 여관 주인에게 사정해서 짐을 풀고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에 귀기울였다.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빗겨서 미시시피와 알라바마를 훑고 지나갔다는 얘기를 듣고 이제 집으로 곧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신씨는 TV 뉴스 화면을 통해 흘러나오는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폰찬트레인 호수를 막아 놓은 제방이 무너져 뉴올리언스가 물바다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신씨는 특히 2천5백여명의 한인 동포 대다수가 살고 있고 유일한 한인 식당과 2개뿐인 한인 마켓이 위치하는 메러리 지역이 물에 잠긴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돈이 없어서 대피하지 못한 흑인 빈민들과 중산층이 거주하는 뉴올리언스 북서부가 주로 침수되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신씨의 처지도 막막해졌다. 물이 빠지려면 6개월, 전기가 들어오는데는 4주, 공항시설이 재가동 되는데는 2개월이 걸릴 것 같다고 보도되는 뉴올리언스에 당장 돌아갈 수도 없고, 40~50달러 하던 숙박비가 130달러까지 치솟은 숙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함께 떠나온 신씨의 룸메이트 선배는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으나 신씨는 당장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더욱이 로스쿨 마지막 학년인 신씨는 내년 5월에 졸업해서 7월에 변호사 시험을 봐야하는데 학교가 개학철인 지금에 휴교를 해서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니,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1년이나 손해를 볼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때 신씨의 머릿속에는 일주일 전에 뉴올리언스에 3일간 여행 왔던 인연으로 알게 된,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완식(32)씨가 떠올랐다. 김씨는 신씨의 절박한 사정을 듣고는 흔쾌히 그를 시카고로 맞아들였다. 김씨는 자신의 넓지 않은 아파트에서 신씨가 편하게 지내며 빨리 학교 당국의 지시를 따라서 학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침대도 구해주고 학교와의 긴밀한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비롯해 따뜻한 반팔 옷만 입고 온 남부지역 출신의 친구가 밤 공기가 쌀쌀해지는 시카고에서 감기에나 걸리지 않을까 긴팔 옷을 사주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신승식씨는 불과 일주일 전에 뉴올리언스에서 3일간 같이 지낸 인연만으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준 시카고 친구에게 훈훈한 인정을 느끼며 고마울 뿐이라는 말을 남기고, 튤레인 로스쿨의 딱한 처지를 듣고 방문학생의 자격을 부여해준 뉴욕의 카르도져대학으로 가기 위해 5박 6일 동안 지냈던 시카고를 떠났다. <이경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