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카운티 북부 어얼리마트에서 36년간 농사를 지어 온 유복형, 이수정 부부(앞줄)가 자녀들과 함께 이삭이 오르기 시작한 논 앞에 서있다. 뒷줄 왼쪽부터 넷째 승규, 다섯째 승봉, 막내 승엽씨. <이승관 기자>
“2천여 한인 희망의 터전”
집값·물가 등 LA보다 저렴
4-5년 고생하면‘내 비즈니스’
<베이커스필드 배형직 기자> LA에서 5번 프리웨이 북쪽으로 120마일 거리의 베이커스필드는 멀고도 가깝다.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지만 마땅한 관광지가 없어 많은 한인들이 프리웨이를 타고 지나치는 정도지 잘 내리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70년대부터 한인들이 정착해 살고 있으니 벌써 30년 넘게 LA 한인들과 이웃하며 또다른 생활권으로 독특하게 성장해 온 곳이기도 하다.
초창기만 해도 석유회사의 연구원부터 용접공에 이르기까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던 한인들이 조금씩 늘더니 1981년 100여명의 한인들로 ‘베이커스필드 한인회’를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요즘은 부동산 붐을 타고, 또는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찾아 온 한인들이 많아지면서 얼마전 한인회가 작성한 한인록 등재 한인 인구가 500가구(2,000명)정도로 집계됐다. 여기에 바로옆 컨카운티 인근 지역까지 합치면 실제 한인 인구는 600가구 3,000명까지도 가능하리라는 계산이다.
자본 없이 시작한 한인들도 4~5년 고생하면 정착을 하고 마켓, 햄버거, 리커스토어 등 안정적인 스몰비즈니스를 운영하게 된다는 것이 베이커스에 한인들이 몰려드는 이유다. 물가와 주택가, 렌트비도 상대적으로 싸다보니 “바닥부터 고생한다”는 생각만 가지면 LA같은 대도시보다도 오히려 더 빨리 정착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는 곳이다.
덕분에 이민자 새내기는 물론 타지역에서 좌절했던 한인들도 베이커스필드로 건너와 새로운 희망에 도전하곤 한다.
1975년 석유회사 용접공으로 취직해 베이커스필드에 정착했다는 서동희(64)씨는 “그 때는 허허벌판이었는데 정말로 많이 변했다”면서 “80년대 중반에는 투자붐을 타고 온 한인들도 많았지만 이 때문에 망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송성욱(46) 한인회장은 “한인회도 회장이 자비를 털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사회비와 자발적 참여로 운영하려고 노력 중”이라면서 “한인사회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유권자 등록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인사회의 비전을 제시했다.
한인농장의 원조‘유농장’
흙내음 물씬, 넉넉한 인심 “살맛나요”
참외등 한국농산물 미국 첫 재배
70년 소작농 시작… 6남매도 가업 이어
농업으로 자리를 잡은 도시답게 베이커스필드와 인근 컨카운티에서는 ‘흙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하는 한인들도 열 손가락으로 셀 만큼이나 많다.
‘농장’이란 이름에서 전원적, 낭만적 상상이 피어오르지만 ‘땅’에서 먹고 살 농산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농부들에겐 삶은 곧 땀이고 현실이다.
사과, 꽃, 야채, 과일 등 다양한 품목들이 한인의 손에 의해 재배되고 있지만, 이 지역 한인 농장의 원조는 베이커스필드로부터 북쪽으로 다시 45마일 떨어진 어얼리마트 지역의 ‘유농장’이 꼽힌다.
유복형(72), 이수정(69) 부부가 70년부터 터를 잡은 이곳은 미국내 한국농산물 재배의 역사가 고스란히 쌓인 곳이다.
동시에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전형적인 농촌 가정의 따뜻함이 완성된 곳이기도 하다. 6남매는 모두 이곳에서 ‘손에 흙을 묻히며’ 농부의 아들과 딸로 훌륭하게 자라나 합동해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농장을 찾았을 때 30년전 허름하게 지어진 유씨의 농가 옆 논에선 벼이삭이 한참 올라오고 있었다. 유씨의 36년 농사 진수는 쌀농사로 올해는 작은 규모지만 순수 유기농으로만 벼농사를 했다.
처음엔 땅을 빌려 소작농으로 시작했고, 10년간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정성스레 재배한 한국 종자 채소는 올림픽마켓이 있던 시절 LA 한인타운에서 팔려 나갔다고 한다.
1970년에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참외 재배를 시작해 그 덕택에 애들 공부시키고 ‘유농장’이란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이런 유씨의 땅사랑 덕분에 노산 이은상 선생의 딸이기도 한 부인 이수정씨도 ‘의사’란 직업을 접고 땅과 자식들에게 헌신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
유씨는 계속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도 “이 날씨가 아니면 곡식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덥다는데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농사는 얼마나 견디느냐는 인내의 문제”라고 반평생을 넘어선 농사인생을 정리했다.
글 배형직·사진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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