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옥<수필가>
너에게 일러 둘 말이 있다
엄마, 무언데?
너 말야, 빨강치마 이쁘다고 너무 뽐내면 안 된다. 새 옷을 못 입는 너희 친구들 마음 아프다
명절 때면 으레껏 빨강치마를 새 옷으로 만들어 주신 던 우리 어머니의 부탁 말씀이셨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새 옷을 입었고, 뽐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빨강치마 덕분에 나는 명절이 더 없이 행복했다.
어- 어메-, 새 색시가 참 이쁘기도 하네. 여자는 빨강치마 입고 있을 때가 제일 이쁘고 행복하지, 빨강치마 벗으면 볼장 다 봐-
제 이의 인생을 맞이한다는 결혼, 미지에 대한 조심스런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도 빨강치마는, 결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의미 있는 날에 나에게 입혀졌다.
어머니, 이 빨강치마 어떻게 할까요?
무슨 옷인데?
한국에서 내가 응원했을 때 입었던 옷 인데요
빨강 치마도 입었었니? 나는 티셔츠만 입은 줄 알았는데-
그-럼 엄마, 온통 빨강 색이었어. 리얼리 엑사이팅했어요
서울 월드컵 때, 때 마침 서울에서 한국어 강의를 받고 온 딸애의 얘기다.
아-아 그 날을 어찌 잊으리오.
상상 이외로 세계 축구 4강에 들었던 그 날을. 세계를 뒤덮을 것 같던 붉은 악마들의 아우성, 거기에 따르는 행복.
그런데, 나는 돌격적 흥분이 깃든 붉은 악마들의 아우성 속에서, 약소민족의 한(恨)이 터져 나오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행적인 감성을 가진 우리 민족, 하나가 되는 즐거움 속에는, 차분한 개성이 사라지는 조심성도 들었다.
가만히 생각 해 보면, 딸아이나 내가 입었던 빨강치마 속에는 언제나 조심성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빨강치마는 언제나 행복한 날에 입었고 행복한 추억이 남아있다.
나는 어느 날, 세계 패션을 주름잡는 의상 디자이너 앙드레 김 선생님이, 풍성하게 디자인한 빨강치마를 입고서 행복에 취하고 싶다.
오- 원더풀, 코리아 레드 스커트!
나 보다 덩치가 큰 사람들이 나를 껴안는 기분이다.
누가 알랴, 언젠가 내가 입은 빨강치마가 유행하여, 세계를 조심성이 필요 없는 행복으로만 뒤덮어 버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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