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10일 호암아트홀 공연장 한쪽에 앉아 숨을 죽이던 이 사람은 6년 뒤인 2003년 9월25일 뉴욕 브로드웨이 42번가 뉴 빅토리 극장 무대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다섯 명의 한국 배우들이 칼로 도마를 신나게 두드렸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터뜨렸다. 그때 한 사내의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보였다. 우리 시대 문화예술계에 가장 신뢰받는 공연기획자로 자리매김한 ‘난타’의 사령관 송승환(47). 그 성공 신화의 눈물 속에는 고난과 역경의 무게를 짓누른 의미가 주마등처럼 매달려 있다.
연극과 뮤지컬에 남다른 애정을 지녔던 그는 ‘세계 시장의 정면 돌파’라는 주사위를 던짐으로써 우리나라 공연시장의 협소함과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70년대 중반 주목받던 배우의 길을 뒤로 한 채,아내와 함께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 그는 3년 동안 브로드웨이 귀퉁이에서 노점상을 하고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면서 수많은 공연들을 기억 속에 빼곡히 각인시켰다. 그 유쾌하고 보람된 가난의 세월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 작품으로 이곳 브로드웨이로 입성하겠다는 야심으로 점철되었다.
꿈이 현실로 바뀌는 30년 동안 그는 배우로서 또 음반,콘서트,연극,뮤지컬 제작자로서 성공과 좌절의 나락을 맛보며 가장 한국적인 독특한 정서만이 세계 시장의 문을 열어젖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난타’는 유례없는 국내 최초의 밀리언 달러박스 뮤지컬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열정과 모험적인 승부사 기질 없이는 결코 이루어내지 못할 과업이었다.
여덟살,KBS 아역 배우로 시작된 그의 연기는 난타의 제작자만큼이나 정평이 나있다. MBC 라디오 ‘양희은,송승환의 여성시대’를 통해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윤기나는 일상의 화법은 듣는 이의 가슴을 은근하게 감아돌린다.
매체를 통해 포장되어 보여지는 배우의 모습과 일상 생활이 일치하는 배우가 바로 송승환이다. 그의 인간적인 매력과 향기가 ‘난타’를 만드는 100여명의 ㈜PMC 직원들이 하나로 집결되는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한 직원의 대답은 그의 인품을 가늠케 했다. 6년 만에 브로드웨이 입성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우리 문화계를 놀라게 했던 그의 희미한 미소 속에는 또 어떤 놀라운 행보가 숨어있는지 자못 기대된다.
/연예칼럼니스트·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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