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음악에도 색채가 있다면 멘델스존이나 바그너의 음악은 풍경화에 해당 할 것이다. 특히 멘델스존의 ‘횡갈의 동굴’, 바그너의 ‘방랑하는 화란인 서곡’ 등은 풍경화보다도 진하게 바다의 냄새가 풍겨온다. 바다가 주는 적막감이라고나 할까, 청록의 물결이 파도치는 고독의 뉘앙스야말로 음악이 주는 또 다른 정취가 아닐 수 없다.
바그너가 남긴 오페라 ‘방랑하는 화란인’은 온화한 멘델스존과는 달리 폭풍우, 격함이 느껴져오는 작품이다. 고독보다는 항해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고나할까, 어딘가 해양 소설 같다.
’방랑하는 화란인’은 SF 오페라가 이번 시즌에 공연할 작품(11/10-12/1)으로 바그너의 작품 중 가장 상큼하면서도 초기를 대표하는 명작이다. 저주받아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화란인의 고뇌와 로맨스가 바그너의 극적인 선율과 어우러져 한 편의 오페라적 장관을 연출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천상의 음악이라면 바그너의 음악은 초인의 음악에 해당했다. ‘바그너’에 영향 받은 니체는 초인사상을 설파했으며, 토마스 만 등은 바그너의 음악을 숭배한 나머지 평생을 작품의 모델로 삼았다.
위대한 음악은 영계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미 초월적인 의지, 해탈의 감동을 말하고 있다. 역사상 바그너만큼 무거운 주제의 작품을 통하여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작곡가도 드물었다. 종교·철학·문학을 집대성한 바그너의 작품은 심각하고 거대하여 음악의 중용을 넘어서고 있으나 탁월한 극적인 감각은 베르디와 쌍벽을 이루며 오페라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었다.
바그너는 그 자신이 고백했듯, 음악적 재능에서는 열등의식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19세 때에 음악학교에 입학, 주로 오페라를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펼쳐 나갔는데 이유는 음악적 재능이 뒷받침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집념이 남달랐던 바그너는 아무리 졸작이라도 한 번 손을 대면 끝을 보고야마는 집념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상큼한 작품보다는 지구력으로 승부를 걸었던 바그너는 길고 지루하며, 현학적인 작품을 다루어, 당시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바그너는 여인의 사랑을 지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그의 ‘사랑을 통한 구도’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바그너는 ‘사랑’과 ‘구도’ 두 문제로 평생을 고뇌하고 방황했다. 그가 음악가가 된 이유도 음악 속에서 ‘사랑’과 ‘구도’ 두 문제를 설파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음악을 단순한 직업이라기 보다는 구도의 방편으로 삼았다.
역사상 바그너만큼 초인적인 작품으로 예술계를 살찌게 한 작곡가도 없었다. 바그너의 추종자들은 바그너의 열정과 예술관… 민족주의,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도덕심에 열광했으며 니체 등은 바그너의 예술에 경도되어 ‘비극의 탄생’을 탄생시키도 하였다. 특히 니체는 바그너가 기독교 사상으로 ‘십자가 아래 난파 당했다’며 바그너의 예술성을 슬퍼하기도 했다.
바그너만큼 예술과 사상(신앙)을 동체로 하여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폈던 작곡가는 없었다. 그의 ‘사랑’과 ‘구도’ 사상은 기독교 정신과 맞물려 19세기 유럽 음악의 전성기를 이루게 했다.
바그너는 1839년 리가에서 파리로 가는 도중 배가 난파, ‘방랑하는 화란인’의 영감을 얻게 됐다. 작품은 하이네의 시 ‘폰 슈나벨레브프스키의 회상’에서 따왔으며, 바다를 영원히 떠돌아다닐 운명에 처한 네덜란드인에게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여성이 나타나면 저주가 풀린다는 내용은 자신이 첨가하였다.
반 데르 데켄 선장은 맹렬한 폭풍우를 무릅쓰고 희망봉을 돌려고 했으나 실패, 그로 인해 설사 영원히 바다 위를 방황한다해도 끝내 그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이후 그의 모험은 저주를 받아 배에 유령 선원을 태우고 영원히 항해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방랑하는 화란인’은 바그너 초기의 대표작으로 음악적으로 우수하며 극적으로도 탁월하다. 공연시간은 2시간 반. 음악은 극에 충실하면도 지루하고, 지루하면서도 극적인 로맨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특히 1막에서 데켄 선장이 7년에 한번씩 육지에 상륙,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하는 장면등은 일품이다.
오페라 ‘데켄 선장의 방황(방랑하는 화란인)’은 바그너가 음악과 사랑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의지의 첫 출발이었다. 저주를 받아 바다를 영원히 떠도는 사나이가 여인의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내용은 바그너에 있어서 무겁고 심각하면서도 평생 방황한 주제였다. 바그너가 작품을 통하여 방황을 마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품을 통한 그의 처절한 방황이 얼마만큼 구도의 사명을 완성했는지는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자들의 몫일 것이다.
▲SF 오페라 방랑하는 화란인 공연- (11/10-12/1) (415)864-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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