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아테네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요즘, TV채널을 NBC에 고정시켜 놓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올림픽 중계를 보는 재미에 포옥 빠져서 지내고 있다.
매일 아침 일터로 배달되는 신문이나 인터넷에 올려진 경기소식, 뒷얘기 등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데도 잘 정리된 기사들을 읽는 동안에는 흥분과 긴장, 희비가 엇갈리는 게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보다 더 생생한 재미가 느껴진다.
엊그저께는 여럿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필리피노 친구 한 명이 우리나라 체조선수 양태영의 금메달 도둑맞은 사건을 나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미국인 친구들에게 설명을 하는가 하면, 남아공 출신의 한 친구는 동방의 조그만 나라 한국이 어떻게 올림픽에서 상위 10위 권에 오를 수 있는지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해 내 어깨에 살짝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올림픽은 역시 세계인의 축제라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고국에서는 올림픽 기간에 절도, 강도 사건도 현저히 줄어든다고 한다.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사람들이 올림픽에 푸욱 젖어 드는 이유는 거기에 진정 매력적인 휴먼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갖가지 가상의 결론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역전의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각본.
우리들 삶의 어디에나 극적인 역전 드라마의 요소가 있겠지만, 스포츠만큼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강렬한 한 방의 역전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운 여름밤에 잠을 설쳐가며 토끼 눈이 되어도 좋아라 하며 응원을 하는 걸게다.
어제는 이런 올림픽 드라마보다도 더 반갑고 나를 감동케 하는 친구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근래에 우리 부부와 좀 더 가까워진 미국인 친구인데, 한 모임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누었을 때 거인 같은 키와 당당한 체구에 비해 여린 송아지 같이 순한 눈빛과 한없이 따스하던 미소와 말투가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종종 만나면서 겪어 본 바로 그는 정말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십 수년 전에는 마약을 사고 팔던 딜러였다는 믿기 어려운 전적이 있다.
이십대에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지내다 그것 때문에 친구가 죽고 그 자신 또한 험한 일을 겪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허물어졌던 젊은 날을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참기 힘든 유혹과 경제적 어려움, 마음 고생이 많았지만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시공무원이 되었고 누구보다도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신에게 의탁한 이후로는 더 깊어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쌓아가며 이전과는 360도 달라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역전의 선수’다. 우리부부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지난해부터는 고아원 시설을 만들 계획으로 멕시코 엔시나다 변두리에 허름한 건물을 사들여 아이들 방학 때뿐 아니라 우리가 선물교환에 여념이 없는 성탄절, 그리고 틈나는 대로 달려가 집을 보수하고 그곳 고아원 등을 방문하곤 한다.
열흘 전엔 온 가족이 올 여름 들어 두 번째 그 곳엘 갔는데, 늦은 나이에 셋째 아이를 임신한 그의 아내가 광주리 몇 개는 엎어놓은 것 같은 큰 배를 하고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힘든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니 은근히 걱정되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킨 경우가 비단 내 친구뿐이랴? 올림픽에서만이겠는가? 우리 이웃들 중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인생역전을 경험했고 오늘도 가슴 뛰는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다.
불리한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 칭찬에 으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해주는 쓴 소리를 진정 고맙게 가슴에 각인시키는 것, 이것이 인생 역전에 숨은 비밀이 아닐까? 그렇게 하기 참 힘들다.
그래도 어느 드라마에서 곤경에 빠질 때마다 주인공이 하는 것처럼 외쳐보고 싶다. “아자 아자 파이팅!”
성영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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