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샌버나디노의 마운틴 발디(Mt. Baldy)는 이름 그대로 훤하게 잘 생긴 대머리 산이다. 시즌에 따라 산 중턱까지 스키 리프트가 운용돼 적게 걷고도 정상의 상쾌함을 맛보려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산행 보조수단이 된다.
그 산에 처음 간 그날은 남들은 하산하기 시작하는 오후에 산행을 시작해 마음이 바빴다. 정상에 올라 휙 돌아본 후 뛰다시피 내려와 겨우 하행선 리프트 막차를 잡았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뒤에서‘툭’소리가 났다. 일행중 한 사람이 리프트에 올려 놓았던 백팩을 계곡아래 떨어뜨린 것이다.
난감했다. 백팩에는 타고 온 차의 열쇠와 지갑 등이 모두 들어 있었다. 당황해서인지 백팩의 정확한 낙하지점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걸어 올라가 백팩을 찾아 오려면 어림잡아 왕복 한시간 반은 걸릴 것 같았고, 하산 길에 스며들 가을 어스름도 걱정이 었다.
별 기대없이 리프트 오퍼레이터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산 정상 쪽과 전화로 뭐라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 얼마 뒤 한 중년여성이 작은 백팩을 찾아 왔다. 소방도로까지는 트럭을 타고 가 계곡 일대를 뒤져 백팩을 찾았다고 했다.
우리 실수인데 수고는 그쪽에서 했다. 한 일행이 고맙다며 팁을 내 밀었지만 그녀는 그냥 미소만 짓고 되돌아갔다.
사례 2
와이오밍주의 옐로우스톤은 명성에 비하면 남가주에서는 다녀온 한인이 의외로 적다. 우선 멀기 때문이다. 인근 명소까지 대충 둘러보려면 LA근교에서는 차로 왕복 2,700마일 내외를 달려야 한다. 그래서 관광회사를 따라 가거나, 아니면 차를 렌트하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런 옐로우스톤을 집에서 쓰는 미니밴을 몰고 갔다가 사단이 났다. 산길 한 가운데서 갑자기 차 앞머리에서 흰 연기가 확 뿜어 올라 왔다. 말로만 듣던 일이 처음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후드를 여니 호스가 터져 냉각수가 분수처럼 치솟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줄줄 새는 짙은 연두색 냉각수가 순간 핏빛으로 착각될 만큼 참담했다.
해발 7,000피트가 넘는 산중에서는 AAA카드도 소용없었다. 휴대폰 마다‘노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항상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더라는 것이 미국생활의 산 경험. 이번에는 펜실베니아 번호판을 단 차에서 내린 중년 남성과 한 20대 청년이 선한 사마리아인 역을 했다.
찬찬히 차 상태를 살펴본 그들은 이런 처방을 내놨다.
첫째, 아직 엔진온도는 높지 않으니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연 후 히터를 최고로 틀어 엔진의 더운 열을 밖으로 내보낼 것. 둘째 래디에이터 뚜껑(뜨거울 때는 위험하니 절대 열지 말라는 그 뚜껑)을 꽉 잠그지 말고 느슨하게 열어 놓고 달릴 것. 그러면 압력이 줄어 더 이상 호스로 냉각수가 뿜어져 나오는 현상이 없어지고, 엔진도 과열되지 않아 100마일 정도는 너끈히 더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응급처치법은 적중했고, 가까운 산골 정비소에서 차를 고칠 수 있었다.
휴가를 다녀와 그 이야기를 했더니 고소해하는 동료도 있다. 차를 렌트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다. “차 고치느라 돈깨나 들었죠”라고 은근히 묻는다.
Guess how much?
정답 : 22달러26센트. 인건비 20달러에 환경보존비 1달러, 판매세 1달러26센트를 냈다.
파트 값은 받지 않느냐고 묻자 시골마을의 20대 금발 머캐닉은 “고무호스만 요만큼 들었는데 무슨 파트 값”이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 갤런은 든 것 같은 쿨런트도 무료 서비스였다.
적용
사회 분위기 탓인지 요즘 서울에서 오는 손님들은 반미 성향이 짙다. 미국이라면 제국주의, 자기네만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그런 서울 손님들에게 미국에 살면서 무수히 겪은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국가와 개인윤리는 다른 일이겠으나 이렇게 도움을 받으며 남의 땅에서 한 20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도움만 받으며 산 우리는 아직도 너무 내 것만 챙기며 살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안상호<부국장 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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