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취재부 차장)
9.11 테러 당일 맨하탄에 무작정 취재를 나간 적이 있었다. 대중교통수단이 끊긴 상황에서 많은 뉴요커들이 종종 걸음으로 맨하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공군 전투기 소리가 들려오자 행인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더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의 눈속에 비친 것은 ‘공포’였다.
얼마전 뉴욕 일대 주요 금융기관에 대한 테러 위협이 구체적으로 발표될 때 뉴욕 일대는 또다시 술렁거렸다. 테러 대상까지 정확히 거론하는 상황인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또 9.11 테러의 직접적인 희생자 가족이 아니더라도 그 여파로 인한 혼란과 어려움을 기억하는 뉴요커라면 누구나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테러 경보가 9.11 테러 이전에 나왔던 정보를 새삼스럽게 발표한 것이라고 해서 말들이 많다.
일부에서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는 테러 경계라고 하고 정부에서는 긴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 지.
한국의 군사 정권 당시 한국에서 학생 운동이나 노조 파업이 한창일 때면 어김없이 간첩단 체포 발표가 나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심지어 ‘이맘때쯤이면 발표가 나올 때가 됐는데’라고 예측하는 사람들까지 있었고, 대부분 그 예상이 맞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정권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동일시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실미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국가 이익과 정권 이익을 동일시한 정보 기관이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정보를 각색한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창설한 특수부대가 정권내부의 상황 변화로 한 순간에 무장 폭도가 되고 결국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 분명 그 속에는 인권이나 전체 국민의 이익은 없다.
연방국토안보부가 발표한 이번 테러 경보가 국가 안보에 한치의 빈틈도 없어야 된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면 할 말 없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국토안보부 장관이 테러 경보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번 테러 정보가 2~3년전에 이미 나온 것이라는 말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미국이 정보 통제가 심했던 구 소련보다 강할 수 있었던 것은 불리한 정보라도 솔직히 공개하고 그 바탕위에서 국가의 이익을 국민들의 합의된 힘으로 극복해나갔기 때문이다.왠지 이번 테러 경보 사태는 늑대가 나왔다고 소리를 치는 양치기 소년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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