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발명한 것 중 가장 위대하면서도 슬픈 것은 시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발명한 시간에 구속당하기 시작하면서 속도경쟁의 덫에 걸리게 됐다. 속도경쟁은 불안, 초조, 시기, 질투 등의 모습으로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난다. 인간은 이런 슬픈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나 없이 숨가쁘게 달려가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굴레의 올가미는 더욱 조여온다.
식당의 음식이 조금만 늦게 나와도, 인터넷 접속이 조금만 느려도, 엘리베이터의 오르내림이 조금만 느려도 신경질을 내고 분통을 터뜨린다. 속도의 노예가 되어간다.
길을 걷노라면 주위를 즐기고 싶었던 본래의 노력은 사라지고 자신도 모르게 군중들 속에 파묻혀 바삐 끌려간다.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대열에서 빠져 나오지만 곧 ‘남들의 빠름’을 보는 불안의 굴레에 갇혀 목적도 없이 정처 없이 또다시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모든 것을 단숨에 끝장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 자식이 대학을 조금만 늦게 졸업해도, 조금만 늦게 직장을 잡아도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단기간에 승부를 건다. 투자한 주식가격이 조금만 내려도, 잠시 오르지 않아도, 참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수없이 종목을 바꾼다. 그래서 하루하루 손익을 알 수 있는 데이 트레이딩(Day Trading)으로 몰린다.
부동산도 그렇다. ‘부동산 붐’이라는 한시적인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가족들의 안식처마저 미련 없이 저당 잡힌다. 그래서 얼마를 남겼다며 뿌듯해하면서 또다시 이삿짐을 싼다. 부모들의 잦은 이사에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친구를 만나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사춘기를 더 어렵게 맞아야 하는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최근 금리가 들먹이면서 투자를 문의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문의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장기적인 재정플랜 없이 한탕을 노리는 ‘투기성 투자’에 대한 문의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정해 놓고 불안한 나머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속도의 굴레에 갇혀 발버둥치는 불나비 같다. 한인들이 사기성 투자에 쉽게 걸리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쉬는 것도 투자’라 했다.
빠른 파종을 위해 겨울에 밭을 갈 수는 없다. 겨울에 쟁기를 들고 나가지 않는다고 게으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방에 앉아 느긋하게 새끼도 꼬고 처박아 두었던 명심보감도 꺼내 보면서 봄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도 장밋빛 경기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현실은 큰 폭의 금리 인상과 유가 폭동, 대통령 선거 등을 앞두고 불안하기만 하다. 주식 가격도 요동친다. ‘오전 폭락, 오후 폭등’ 장세다. 잠시 투자의 숨을 고를 때다. ‘나’를 찾을 때다. ‘나’를 잃어버리고 남을 허둥지둥 따라 가다보면 결국 길을 잃고 속도의 굴레에 갇혀 실패하고 만다.
좋은 투자, 여유 있는 삶을 원한다면 시간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시간과 친구가 되는 것은 느림과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이다. 이민 생활을 하느라 ‘빨리빨리 철학’이 자신도 모르게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스스로에게 긴 시간을 주라. 추수 뒤 이삭을 줍는 심정으로 한 발 느리게 전진하라. 새벽녘 이슬 소리도 듣고, 붉게 물든 저녁 노을도 감상하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공원도 거닐어라.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사전을 들쳐가며 월스트릿의 투자가이드도 공부해 보라.
느림의 미학을 회복할 때 시간은 길어지고 마음도 느긋해진다. 남은 인생 길과 투자의 길도 더 밝게 보인다. 결코 시간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덤을 향해 가는 존재다. 시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활용하느냐는 얼마나 속도를 내지 않고 ‘나’를 찾느냐에 달려 있다.
권기준<부국장 대우·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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