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14개월 복무 마친 지나 양씨
목숨 걸고 번돈 받고 가슴 찢어졌던 부모
딸 군동료들 초청, 무사귀환 파티
1일 가든그로브 양용현(58)씨 댁 뒤뜰에 시커멓게 그을린 15명이 넘는 젊은 군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양씨가 이라크 발라드에서 316부대 식수 공급병으로 14개월의 복무를 마친 딸 지나(21·칼스테이트 풀러튼대)씨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에 동료들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교전이 벌어질 때면 부모님께 편지를 썼어요. 사랑한다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혹시나 부모님 곁을 떠나야 될지 몰라서요.”
고교 2학년 때 총 든 강도를 맨손으로 붙잡았을 정도로 당찬 그였지만 전장에서 엄습해 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양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단다.
양씨는 2002년 예비군에 지원, 매달 한 번씩 훈련을 받아오다 이듬해 이라크 파병군으로 차출됐다.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2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부대원 104명과 함께 지난해 4월 이라크로 떠났다. 양씨는 이라크에 도착하자마자 열악한 환경에 너무 놀랐다. 낮에는 기온이 150도까지 치솟았고 밤에도 100도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시설도 없었다. 물이 워낙 귀한 탓에 샤워는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페트병 하나로 몸을 씻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끈끈한 동료애로 똘똘 뭉친 부대원들에게 더운 날씨와 열악한 환경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밝힌 양씨는 “언제 폭탄이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 등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군대 지원 동기도 멋지다. 양씨는 “나보다 힘든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 있냐. 후끈 달아오른 길바닥을 신발도 없이 다니는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울부짖는 것을 볼 때면 이 곳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국가가 다시 날 부르면 언제든지 갈 것”이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오택(23)씨는 “외동아들이라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삶에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이라크에 가게 됐다”며 “소수민족인 한인도 미국인들과 똑같이 나라를 위해 싸우러 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전장으로 떠난다는 딸이 너무 야속해 배웅도 가지 않았다는 양씨 부부는 “딸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어렵게 번 4,000달러를 여행 다녀오라며 보내왔을 땐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딸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너무 다행이고 기쁘다”며 웃는 얼굴에 어느덧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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