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경(학생 주부)
식탁에 호사를 부리고 싶어하는 여인 치고 웨지우드 진열장을 그냥 지나치기 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름이 뭔지 읽을 줄은 몰라도 그 품위에 잠시 탐심이 분수도 모르고 솟아날 뿐이다.
우리가 한 천년쯤 전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체 높은 귀족 마님이 우아하게 따르는 비취빛 찻잔에 넋을 잃었을 것이다. 징기스칸 피붙이 정도 되야 그 비취색 그릇에 술도 마시고 물도 마시고, 붓도 담갔다 난도 치고 그랬겠지? 그러나 made in 고려가 아닌 것을 알게되면 간 큰 장사치 혼 줄이 났을 것이다.
우리나라 청자가 세상에 나온 것은 한 9세기 즈음이라고 한다. 중국은 우리보다 200년 먼저 청자를 만들었으니 서양의 자기가 17세기 세상에 빛을 보았던 것에 비하면 동양의 우리가 훨씬 생활하는데 호사를 누렸던 샘이다. 전해지는 그릇의 수로 따진다면 당연 송나라의 청자가 최고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서해안 바닥에 쫙 깔려 있으니 말이다. 차이나 타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연한 푸른빛의 자기는 송 자기 아니면 그 전통에서 나 온 것들이다. 물론 중국의 청자도 세계 명품에 꼽힌다. 특히 북송의 여관요 청자는 빼어나다. 그런데 그런 중국에서도 가장 갖고 싶어하는 자기가 당시 고려청자였다고 역사 기록이 전하니 가히 12세기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라고 볼 수 있다.
1월 말까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서는 <고려 특별 전>이 개최되고 있다. 아마 국제적인 지위로 따진 다면 지금의 우리 보다 11, 12세기의 우리 선조 들이 더 낳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 만큼 우수한 문화로 국제사회를 리드해 갔기 때문이다. 청자가 귀족 문화의 기호품이었다면 고려불화는 동시대 서구 비잔틴의 이콘(icon) 보다 더 화려히 니르바나 (nirvana)를 재현했다. 일본이 국보로 지정한 고려불화만 해도 한 두 점이 아니고 언젠가는 소더비 최고의 경매가도 갱신했었다. 아마 당시 아름다움의 키워드는 화려함이었나보다.
일본사찰에서도 몇 년에 한 번쯤 한 사나흘 공개하는 것이 전부이니 만큼, 최고의 불화가 아니어도 이 번 전시를 놓치면 사뭇 칠 것 같다. 한 40년 즈음되었을까? 한 시골영감님이 두루 말이 한 뭉치를 들고 삼성 빌딩 앞에서 강짜를 부렸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병철 회장을 만나야 한다며 말이다. 미술품 애호가인 이 회장 앞에 풀어 낸 두루말이에 얽힌 사연은 이랬다. 농사지으며 근근히 살아가던 할아버지는6.25 당시 한 스님을 살려냈다. 무수히 굶어 죽어 나가던 시절이었으니, 죽 몇 그릇 나누어주고 평생 은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 스님은 전쟁통에 또 어찌 될지 모르는 목숨이라, 때에 쩔은 바랑에서 두루 말이 한 뭉치가 담긴 함을 건네며, 잘 간직하면 언젠가 한 번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물론 농부는 그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스님 말만 믿고 당 대 최고 부자를 찾아와 그 당시 서울에서 집 여섯 채는 족히 살 수 있는 값을 불러댔다. 참으로 배포 큰 노인이다.
이 영감님의 두루말이는 곧이어 국보로 지정되었고, 지금까지 이 회장이 설립한 호암 박물관의 대표유물로 귀하게 보존되고 있다. 당시 감정을 맡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그 유물이 금으로 쓴 화엄경 보원행원품 이었는지 은으로 쓴 진언경 이었는지는 가물거린다. 시골 할배 보다도 안목이 어두워 수업 종이 침과 동시에 그만 알맹이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와 있는 보물이 바로 그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앞설 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