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가주 한인미술가협회의 회원이다. 올해의 회장단이 38대라니 그전에 비공식으로 원로 작가 몇분이 모여서 활동하신 시간까지 합치면 40년도 넘는 세월을 이어온 단체이다.
그림을 전공한 이들이 간단한 심사를 거쳐서 모이는 단체이니 회원들도 많고 또 밖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불미스러운 일이 없는 건강한 단체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내가 입회할 무렵에 한두해 차이로 같이 들어 온 또래의 두어 동료들을 빼고는 나와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선배들 뿐이셨다. 그 당시 회장이시던 분이 우리 친정 어머니와 동갑이셨으니 아무래도 어렵고 공감대가 적다고 느꼈었다.
처음 미협에서 일년에 한번씩 여는 정기 협회전에 그림을 내며 우리 신입회원들은 회비를 내며 그림을 거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또 우리보다 훨씬 경륜이 깊어보이는 부모님 나이뻘 되시는 어른들 가운데서 어떻게 섞여야 할지를 몰라서 어색하기도 하였다.
그럴때 신년의 첫 행사로 모였던 미협신년회는 다같이 밥 먹고 가라오께로 노래도 부르는 그런 모임이었는데 우리 같은 신참들이 나서기에는 여러가지로 어려워서 젊은 회원들은 밥 먹고 앉아서 어색한 웃음으로 선배들께 인사나 건네는 것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그럴 때 옆에 앉은 신입회원들끼리는 자리의 불편함도 떨칠 겸 어색한대로 “요즘 작품 열심히 하세요?”이런 인사로 시작하여 “그럼 열심히 하시고 전시 있을때 연락 주세요”같은 생산적이다 못해 경쟁적이기까지 한 말들로 작별인사를 대신했었다.
그후 몇년을 그림과 또 다른 여러 생활에 얽혀서 살다보니 미협 정기 전시에 그림을 못 낼 때도 있었고 신년회가 있다고 연락을 듣고도 건너 뛸 때도 많았다.
사는 것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수는 없다는 것과 그래도 하고픈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 것이라는 내 속의 희망과 현실 사이를 오가던 시간들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떤 거창한 창작을 위한 굴레가 아니라 그냥 내가 사는 것, 내 안에 있는 소망대로 그냥 행복하고 싶어서 정직하게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어렵게만 느껴지던 선배님들도 가깝게 느껴지고 작년부터는 내 가 사랑하는 일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일년에 한번 만나는 날로 신년회가 기다려졌다.
올해의 신년회에도 여러 신입 회원들이 소개되었다. 이십대 초반의 싱싱한 미인 회원에서부터 내가 태어나던 해를 학번으로 소개하는 신입회원까지 있었다.
학교를 갓 졸업했다는 밝은 목소리의 신입회원의 자기 소개를 듣자니 그 젊음의 싱그러움에 나까지 기분이 밝아진다.
또 나이 지긋하신 신입회원들의 “여직 다른 일을 하고 살다가 이제는 정말 그림을 하고 싶어서 왔읍니다”라는 자기 소개에서는 그분들이 살아오는 동안 겪었을 자기가 하고 싶던 일에 대한 그리움의 시간들이 느껴지는 듯 하여 가슴이 아팠다.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듯이 모든 회원들이 반가운 것은 그분들이 나와 같은 그리움을 품고 같은 방향을 보며 살기 때문이리라.
사람마다 누구나 사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하는 일이 힘에 부쳐서 가끔은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이겨가며 사는 것 같다.
그럴때 주변에 같은 길을 가고 비슷한 마음을 품은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위안이 된다.
식구들 앞에서 재롱을 떨듯 긴장과 가식을 내려놓고 시키는 것을 열심히 하며 신년회를 즐기자니 같이 들어왔던, 이제는 근 십년지기가 된 나의 동료들이 더 반갑다.
우리는 이제 다른 차원의 인사를 나눈다. “00씨, 행복하게 살고 있지요?” “그럼요. 건강하게 오래 살며 작업합시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를 지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고경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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