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들이 열두살 되는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애들 파티래야 뭐 특별히 하는건 없지만 그래도 초청한 애들 숫자 맞춰 음식 준비하랴, 케익 사오랴, 영화 데리고 다니랴, 정신이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해주고, 집에서 김밥이니, 튀김도 하고 만두를 굽는등 정성을 보였으나 올핸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나이가 한자리숫자 때나 친구들 불러다 파티라고 하는거지, 이건 열두살이나 먹은 녀석이 덩지 큰 아이들을 여섯명이나 불러대니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굳이 하겠다니 어쩌겠나. 아침부터 아이스크림 케익을 사다 냉동칸에 넣어놓고, 과일도 좀 사다놓고, 피자를 오더하고 픽업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남편도 미리 영화관에 가서 ‘잡을테면 잡아봐’(Catch Me If You Can) 티켓을 인원수대로 사왔다.
그런데 모여든 아이들이 가져온 생일선물이 좀 의외였다. 두 친구가 생일카드 속에 20달러씩 현찰을 가져온 것이다. 아들은 못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러잖아도 크리스마스다, 신정이다 하여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할아버지댁에 세배 다니면서 600여달러를 긁어모아 우리중 최고 부자가 되었는데 돈이 더 들어오니 몹시 흐뭇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른이 아이들 생일에 돈을 주는 것하고, 아이들끼리 선물 대신 돈을 주고받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물론 돈이 더 편하다는 것은 나도 안다. 아이들이 가져오는 생일선물이란게 대개 한두번 굴리면 못쓸 장난감이 태반이고, 나도 다른 아이들 생일선물을 사서 들려보내야 할 때면 뭘 사야 할지, 바쁜데 사러가기도 힘들고 귀찮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본인이 사고 싶은걸 사도록 돈으로 주면 피차간에 편하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선물이란 축하하는 마음이 담긴 것인데, 어린아이들에게 벌써부터 뭐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르쳐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다 못해 ‘반스 앤 노블스’ 같은 책방에서 선물권을 사다주어도 될텐데 어떻게 돈을 선물이라고 들고 올 수 있는가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날 아들이 한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그 친구는 생일파티에 오고는 싶은데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선물이 없으니 자기 부모가 못 가게 한다며(선물이 파티 입장권인가) 못내 아쉬워하는 친구에게 아들은 내 귀를 의심케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괜찮아, 10달러나 20달러를 가져오면 되잖아”
아! 맹세코 나는 아들을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다. 펄펄 뛰며 야단치는 나를 아들은 겸연쩍은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진정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 잘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날은 여러 가지로 내가 열 받은 날이었다. 아이들이 피자를 먹는 태도도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손 씻고 오라 해도 말을 듣는 놈이 없었을 뿐더러, 먹고 나서도 피자와 마늘빵을 주물럭거렸던 기름 많은 손을 바지자락에 썩썩 문지르거나 식탁 머리에서 대강 털어내고는 게임기와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대니 나는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논다는 것이 모두 게임하는 것이라 컴퓨터 게임하는 놈, 게임보이 하는 놈,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하는 놈... 실컷 먹고 앉아서 각자 게임에 열중하니 이게 무슨 파티인가. 그러니 엉덩이가 무겁고 뚱뚱해질 수밖에...한 아이 빼놓고는 모두 우리 아들처럼 옆으로 퍼진 몸들이었다.
듣자하니 요즘 틴에이저들은 생일에 ‘랜 파티’ 라는걸 연다고 한다. 각자 자기 컴퓨터를 떼어와 긴 탁자에 죽 설치해 놓고는 밤 새워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변한다 해도 생일파티 풍경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내년부터는 생일파티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툴툴대자 남편은 못내 섭섭하고 못마땅한 얼굴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일년에 하루밖에 없는 날인데...”하며 나를 비정의 어머니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아무리 비정하다 해도 이런 생일파티는 정말이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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