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핸드’ 미국정책 심도있게 분석
주변회의적 시각불구, 낙관론 견지
”깨어 있었지만 아파 보였다”
1999년 유럽에서 열렸던 8개국(G-8) 정상회담에 참석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클린턴의 옐친 관찰은 예리했다.
작가 스트로브 탈보트는 최근 출판한 수작 ‘러시아 핸드’(랜덤하우스 출판사: 478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클린턴은 대통령 말기 옐친과 매우 자주 회담을 가졌다. 클린턴에 앞서 백악관을 거친 아홉 명의 대통령들을 합친 것보다 러시아의 지도자를 많이 만났다”
클린턴의 옐친과의 잦은 접촉은 과연 성과가 있었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집권 후기 옐친은 항상 건강이 좋지 않았고 부패한 정부와 심각한 경제난을 안고 있는 국가의 수반이었으면서도 그는 종종 술독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국무차관까지 지내면서 클린턴 시절 대 러시아 정책결정의 핵심인물이었던 탈보트는 클린턴의 옐친 접촉의 의미를 ‘러시아 핸드’에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탈보트는 클린턴의 러시아 정책이 무엇보다도 현실에 기반을 두었다고 주장한다.
클린턴과 그의 참모들은 옐친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장기적 전망을 낙관하고 있었다.
클린턴과 참모들의 판단은 옳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작년 옐친의 후계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모색한 것이 이를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탈보트의 책은 “클린턴 대통령도 나름대로의 성공을 이뤘다”는 보다 큰 사실적 구도를 펼치고 있다.
1990년대 냉전 종식과 함께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이 일대 혼선을 빚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종종 모든 일이 제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러시아 문제와 관련, 클린턴 진영이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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