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시가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 주가를 대표하는 다우 존스 산업 지수는 19일 전날에 비해 390 포인트 떨어진 8019를 기록, 테러 직후 최저점이자 심리적 저지선이던 8200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다우보다 폭넓게 미 주요 대기업을 망라하고 있는 스탠다드 & 푸어 500지수와 하이텍이 집중돼 있는 나스닥 지수는 이미 테러 후 최저점 밑으로 내려간 상태다.
대공황 이후 미 불황 장세의 평균 지속 기간은 17개월, 낙폭(S&P 500)은 32%였다. 이번 베어 마켓이 시작된 것은 2000년 3월부터니까 기간이나 낙폭으로 봐 평균을 훨씬 넘었다. 낙폭은 아직 70년대 불황 장세(50%)에 못 미치지만 기간으로는 이미 능가했다.
지난 5월 이후 미 주가의 숨돌릴 틈 없는 하락과 함께 올해 말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꼬리를 감추고 이중 불황이니 전 세계 동반 불황이니 하는 불길한 얘기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실물 경기는 회복세로 접어들었는데 이처럼 주가가 연일 폭락하고 있는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다.
주가는 미래 경기를 점치는 가장 정확한 지표의 하나다. 두 개가 언제까지나 이처럼 제 갈 길을 갈 수는 없다. 주가가 회복되거나 아니면 경기가 다시 침체로 접어들거나 두 가지 중 한 가지 사태가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어느 쪽일까.
단기적으로는 주가 회복 가능성이 높다. 베어 마켓이라고 주가가 일직선으로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황 장세 중 일어나는 반등은 일시적이나마 호황 장세 때보다 더 강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반등은 지금처럼 투자가들의 공포가 시장을 덮고 있을 때 자주 일어난다.
투자가들의 심리상태를 재는 과 매도 지수(oversold index)는 이미 테러 직후보다 밑으로 하락한 지 오래다. 2년 반에 걸친 긴 기간 동안 오를 것을 기대하며 주식을 움켜주고 있던 소액 투자가들이 최근 들어 희망을 버리고 팔기 시작했다. 뮤추얼 펀드 투자액보다 환수액이 더 커진 것이다.
개미 군단의 이탈도 미 주가가 바닥에 가까이 와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주가가 바닥을 다지고 반등하기 전에 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떼로 몰려 파는 투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19일의 미니 크래시는 일부 투자가들의 자포자기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 주 증시가 어떻게 움직일 지는 모르지만 다우가 다시 수백에서 1,000 포인트 이상 폭락한다면 잠정적인 바닥에 이르렀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반등하더라도, 또 반등 폭이 의외로 크더라도, 이를 호황 장세의 부활로 보기는 어렵다. 길고 지루한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 주가는 주당 소득에 대한 가격 비율(P/E) 등 전통적으로 주가의 적정가를 재는 기준으로 볼 때 아직 엄청나게 과대평가 돼 있다.
그 동안의 미 주가가 거품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거품이 부풀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다우가 3600이었을 때다. 일단 거품이 터지면 거품의 시작 전까지 되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1920년대 말 미 주가가 그랬고 1980년대 말 일본 주가가 그랬다. 아직도 미 주가가 얼마든지 더 떨어질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30년대 미국과 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 짝이 날 것인가. 아직까지 이를 점치는 사람은 소수다. 그러나 2000년 3월 신 경제와 닷컴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치솟던 시절 불과 2년 뒤 미국 경제가 이 지경에 이를 것을 내다본 사람은 드물었다. 앞날을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미 경제가 90년 불황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민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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