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 26분 황선홍, 논스톱 왼발 슛, 골! 후반 8분 유상철 아크정면 오른발 강슛, 골!
그야말로 48년 묵은 체증을 쓸어내고 감격적인 첫 승의 문을 활짝 열어제친 통렬한 축포 2방이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얻어낸 가물디 가문 골의 역사는 폴란드전 2대0 완승이 얼마나 값지고 끈질긴 인고의 세월 뒤에 거둔 환희인가를 아련하게 또 생생하게 대변한다.
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첫선을 보인 한국 축구가 첫 승은 고사하고 첫 골의 감격을 맛보기까지는 32년을 기다려야 했다. 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터진 미드필더 박창선(전 청소년대표팀 감독·현 경희대 감독)의 통렬한 30m 장거리 곡사포. 비록 한국은 1대3으로 패했지만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그 대회 챔피언군단의 심장부를 한차례나마 강타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꿀맛 같은 골맛을 본 한국은 불가리아전에서는 0대1로 끌려가다 김종부의 문전 가슴 트래핑에 이은 오른발 터닝슛으로 동점골을 뽑아 처음으로 승점(1점)을 기록하는 알뜰한 수확을 거뒀다.
제2의 차범근 소리를 들으며 고교 및 대학가 최고 스타였던 김종부는 프로입단 때 현대와 대우에 이중계약을 맺었다가 법정소송에 휘말리는 와중에 타고난 만큼 펼쳐 보이지 못한 채 선수생명을 단축, 경남의 한 고교에서 지도자 인생을 걷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벌칙구역 왼쪽 바깥에서 골네트를 찢을 듯한 벼락같은 오른발 중거리포를 명중시켜 그 대회 멋진 골 탑10의 주인공이 됐던 최순호는 은퇴 뒤 한때 청주 시의원 출마 등 잠시 한눈을 팔다 축구장으로 회귀, 현재 옛 소속팀 포항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역시 이탈리아전에서 문전 혼전 중 방향 없이 퉁겨 오르는 볼을 슬라이딩 태클로 우겨 넣어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한 게임 멀티골을 완성시킨 허정무는 제철가 형제구단 포항과 전남의 사령탑을 두루 맡은 뒤 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의 지휘봉을 동시에 잡았으나 2000년 말 퇴진, 현재 KBS-TV 고정 해설위원과 몇몇 신문의 객원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86년 첫 득점·첫 승점의 여세를 몰아 첫 승을 꿈꾸며 출전한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태극사단이 거둔 성적은 참으로 초라했다. 고작 1득점에 3전 전패. 그 유일 골은 황보관이 스페인전에서 30m 가까운 프리킥을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들게 한 대포알이었다. 덕분에 ‘캐논슈터’란 애칭을 들으며 한국내 프로리그를 누볐던 황보관은 9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2부 리그에서 뛴 것을 계기로 현재 일본 오이타의 청소년팀 지도자로 제2의 축구인생을 펼쳐가고 있다.
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중거리포로 추격의 실마리를 푸는 만회골을 터뜨리고 디펜딩 챔피언 독일과의 일전에서도 중거리포를 명중시킨 홍명보는 아직까지 대표팀 부동의 수비수로 뛰고 있다. 독일전에서 1골을 기록, 잔뜩 구겨진 골잡이 체면의 일부를 추스른 황선홍도 월드컵과 함께 태극 유니폼을 영구 반납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선 첫판 폴란드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평생 잊지 못할 은퇴선물 한 꾸러미를 챙겨놨다.
스페인전에서 홍명보의 어시스트를 받아 통렬한 인저리 타임 동점골을 차 넣었던 서정원은 프랑스에 진출했으나 성공의 나래를 펴지 못한 채 옛 둥지 수원삼성으로 되돌아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에서 전매특허인 왼발 감아 차기 프리킥으로 한국 축구사상 최초의 월드컵 선제골을 선사해 기쁨을 주고 곧바로 백태클 반칙으로 퇴장 당해 아픔을 줬던 하석주는 이번 대회 명예회복을 별렀으나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해 사실상 은퇴의 길을 걷고 있다.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 악바리 동점골을 성공시킨 유상철은 히딩크 사단에서도 다용도 선수로 총애를 받아오다 폴란드전에서 대포알 같은 승리 쐐기골을 뜨려 다시 한번 유비(그의 별명)의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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