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창]
▶ 이인희 (Caregiver)
’오늘 기분이 어때요?’
’아주 좋아요’
Good, Good을 연발하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침대에서 나를 맞이하는 비니는 ALS 라는 흔치않은 병을 앓고 있는 75세난 할머니다. 뉴욕 양키즈의 유명한 야구선수 루 게릭이 앓았던 병으로 일명 루게릭 병으로 알려진 이 병은 뇌와 척추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됨으로써 점차적으로 팔, 다리, 안면, 입, 호흡기등의 근육이 약해지고 마비되는 퇴행성 질환이다. 보통 ALS로 진단 받으면 기껏 3∼4년 밖에 살 수 없으며 정확한 원인도 모르는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미스테리한 질병이다.
작년 이맘때 온 천지에 봄내음이 물씬하고 마당이 이름모를 분홍꽃으로 온통 뒤덮여 있을 때 비니를 만났다. 그녀는 ALS로 진단받은 지 일 년만에 리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딸이 사는 북가주 밀밸리로 이사왔다. 그 때만해도 혼자 스푼을 들고 식사할 수 있었고 큰 어려움 없이 거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팔을 거의 쓰지 못 하여 식사를 먹여주어야 하고 겨우 손가락만 몇 개 움직일 뿐이어서 전화기 버튼 누르기도 힘들 정도다. 다리 근육도 약해지고 무릎에 통증과 경련이 와 부축을 해야 겨우 걸을 수 있다. 그나마 넘어질 위험이 항상있으므로 머리에 헬멧을 쓰고 걷자고 하여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집 밖에 열 다섯 개나 되는 돌계단이 있어 아예 바깥출입을 못한지는 벌써 오래 되었다.
자칫 자포자기와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희망 없는 질병과의 고통스런 여행이지만 그녀는 현실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부지런히 살고 있다. 복사기로 찍어낸 것과 같은 똑같은 일상의 삶이지만 그녀의 삶의 내면에는 질서와 규칙, 평온함이 배어있다.
비록 기운이 없어 오랫동안 앉아있지 못하고 두 시간 간격으로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곤 하면서도 열심히 주식관련 잡지를 보며 투자를 하여 보통사람 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나는 비니의 생활을 도와주고 건강을 돌보며 때론 말벗이 되어 주곤 한다. 요즘은 매일 뒷마당에 나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역사를 전공한 그녀가 세계사, 미국사에 대해 신바람나게 얘기하고 나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소개하며 즐거운 대화로 이끈다.
서서히 약해져 가는 얼마남지 않은 그녀의 인생이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시한부 인생이 되길 바란다. 어차피 우리 모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 아닌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