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아프리카 중서부 기니만의 한 마을에서 약탈자들이 오두막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노예로 잡아간다. 쇠사슬에 묶여 노예로 팔려갈 운명에 처한 주민들은 모두 흑인이며 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려 하는 사람도 흑인이다.
코트디부아르의 영화감독 로저 그노안 음발라가 만든 <아당가만(Adanggaman)>의 한 장면이다. 이제까지 흑인노예문제를 다룬 영화를 흑인을 피해자로만 묘사했지만 이 영화는 가해자로서 흑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다소 의외인 이런 설정은 그러나 "사실에 근거한 픽션"이라는 음발라 감독의 설명처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당시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에 노예제도가 존재하고있었으며 부족장들이 자발적으로 많은 흑인들을 유럽에 노예로 팔아넘겼다.

영화의 제목인 아당가만도 당시 아프리카의 부족장 이름으로, 영화는 술과 총을 얻기 위해 부족민을 네덜란드 노예상인에게 팔아 넘기는 그의 추악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감추고 살았고 감추고 싶었던 아픈 역사에 대해 이제는 솔직히 이야기할 때라고 음발라 감독의 말처럼 숨기고 살았던 아픈 과거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솔직한 반성을 담고 있다.

영화의 충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피해자의 후손인 서구의 흑인들은 충격과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이 영화를 바라보는 아프리카인들의 반응은 오히려 담담하다.

부르키나 파소의 다 보르디아 레온 문화예술장관은 노예시대에 흑인은 피해자였으며 동시에 가해자였다면서 이는 숨기고 살아왔고 숨기고 싶은 과거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했다.

레온 장관은 과거에 대한 반성없이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면서 슬프지만 이제는진실을 제대로 알릴 때가 됐으며 <아당가만>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당가만>은 부르키나 파소에서 열리고 있는 페스파코 영화제를 통해 아프리카인들에게 소개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프랑스 아이앵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베니스와 토론토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으며 현재 6개국의 영화공급업체와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등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음발라 감독은 지난 93년 페스파코 영화제에서 <예수의 이름>이란 영화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감독이다.

(와가두구<부르키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