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여성작가 이지형(26)의 장편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문학동네 발행)는 ‘뒤집기’의 소설이다.
1930년대의 경성. 근대 한국사 최대의 암흑기, 일제시대의 암울한 사회상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작가는 뻔뻔스럽고도 흥미롭게 뒤집어놓는다.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청년 대신 거기에는 총독부의 하급 관료로, 여자 쫓아다니기에 골몰하는 자칭 낭만의 화신인 청년 이해명이 나온다.
’나는 반성하지 않는다’ 가 그의 인생의 좌우명이다.
한쪽에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 조난실이 있다. 독립운동을 하는 테러리스트를 남편으로 두었다며 지하독립운동단체인 ‘20세기 모던 이미지댄스 구락부’의 자칭 수장인 여자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이 남녀가 벌이는 한 바탕의 소극(笑劇)이 소설의 내용이다.
작가는 이른바 역사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뻔뻔함으로 두 남녀의 유치찬란한 이야기를 신나게 펼쳐보인다.
출장 기생을 태운 인력거, 종로를 지나는 전차,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출몰하는 댄스홀과 카페가 그 배경이다.
이씨는 학부 문창과를 나와 지금은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올해 제5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았다. 그는 뒤집기의 의도를 이렇게 말한다.
"70년대 중반에 태어나 80년대는 집 안에서 TV 외화시리즈를 보며 보낸 저에게 한국사회는 슬로건과 표어 딱지의 사회입니다. ‘하면 된다’ 부터 ‘세계화, 정보화의 대한민국’ 까지. 그 지긋지긋함을, 그 넘쳐나는 대의명분을 뚫고 나가기 위해 ‘시간여행’ 을 떠나본 것입니다."
21세기 초입의 수도 서울은 작가에게 20세기 초의 식민지 제일의 도시 경성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는 그런 의식에서 나온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운 비명인 셈이다.
무거운 대의명분을 벗어 던지고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모든 역사에서 신세대는 언제나 건방지고 경박한 역사의식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다" 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문학의 엄숙주의를 조롱하며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비관과 허무주의에 빠지지도 않으려는 젊은 작가의 의도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면서, 기발한 발상과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재기 넘치는 표현들을 읽는 것이 이 작품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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