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앉아서 보는 그림,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걸려있어, 나를 바라보아 주는 그림, 이 세상 그 누구도 다시는 흉내내어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있다.
아직은 아니 언제라도 화랑에 내어 걸을 생각이 없고, 영원히 내게 간직될 그림이 있다. 나의 무료한 시간은 물론, 무슨 일에선가 화가 나거나 답답했을 때, 특히 사춘기 세 녀석들이 막무가내로 나를 열받게 할 때에 그 그림은 나를 정복한다. 완전히 나를 녹여(?)주는 힘으로 쉽게 그냥 거저 해치우는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해줄 수 없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그림!!! 이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내가 ‘스무고개’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하다.
결혼 전, 미대 다니던 친구에게서 받은 그림, 결혼 때 선물로 받은 K화방의 그림, 시아버님께 받은 대나무 그림,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받은 그림들이 집안에 걸려 있었다.
어느 날 아이들 앨범과 그림을 정리하게 되었다. 언제 이런 기막힌 순간이 있었을까? 아이고 이쁜 녀석!!!...
사진에 박힌 나의 살아있는 행복, 즐거운 느낌에 눈물이 돌았다. 나는 어떤 생각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보관되고 있던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을 찾아내었다. 사진만 틀에 넣어서 걸을 줄 알았던 내가 아이들 그림을 반듯하게 액자에 넣어 걸었다.
한 방 가득히 아이들의 그림이 전시(?)된 셈이다. 제목도, 등수도 매겨져 있지 않는, 아니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는 그들의 완전하게 자유로운 작품이 걸려있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다른 기성 화가들의 그림에서 차츰 흥미를 잃어갔다. 늘 같은 자리에 변함없는 분위기, 표정 없는 메시지를 주는 꽤나 값(?) 나가는 그 그림들을 떼어내게 되기까지 하였다.
그 그림들은 어느 때였는지 내게 느낌과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의미와 가치도 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돈이 되고 가치가 있는 물건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떼어낸 그 자리에 걸려있는 그림들, 내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그린듯한 그림, 자유롭게 꾸밈없이 그린 그림, 익살맞게 고양이 코 위에 털을 세우고 눈을 지긋이 감게 한 웃음을 그린 그 아이의 심상을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난다. 살구 씨를 씹은 듯한 표정이라든가, 엄마의 머리에 빨간 왕관을 씌운 그림이라든가 햇님에게 선글라스를 씌운 그림, 나비를 잡으려 발자욱 소리를 죽이고 숨소리도 낼 수 없는 듯한 그 애의 모습....
그런 그림들로 나의 공간은 채워 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었을 때에도 서러운 일이 있을 때에도 나는 그 그림 앞에서 나의 자리를 찾곤 하였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 그려준 최고의 그림 앞에서 나는 내 인생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리는 최고의 그림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그들은 내게 최고의 그림을 그려주는 대상이며 내 가슴에 영원히 남는 최고의 그림이기도 하니까.
날마다 그림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날마다 그들의 사랑을 느끼며 우리는 주고 받는 마음이 있어 그 그림을 엮어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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