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휘날리는 VA 로녹대 ‘김규식 센터’를 가다

➊ 김규식 센터가 위치한 로녹대 뱅크 빌딩, ➋ 2021년 버지니아 역사자원부가 설치한 김규식 안내판 ➌ 그 뒤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➍ 1943년 중국 중경 임시정부에서 김규식 선생이 미국 LA의 대한인국민회에 보낸 전보 원본을 민족문제연구소 윤흥노 전 이사장이 김규식 선생의 손녀 김수옥 여사에게 전달하고 있다. 전보 원본은 그간 안창호 선생의 손자인 필립 안 커디 씨가 소장하고 있었다. ➎지난 13일 ‘김규식 센터’ 오프닝 행사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캐서린 울프 학장, 문인석 총영사, 김수옥 여사, 프랭크 슈샥 총장, 스텔라 슈 교수.
버지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로녹대(Roanoke College)에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워싱턴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에 위치한 로녹대는 1898년 첫 한인 졸업생(서병규)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김규식,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 등 19세기 말부터 이어져온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을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 13일‘김규식 센터’(Kim Kyusik Center for Korean Studies) 개관식 취재를 위해 방문한 로녹대 교정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마주했다.
김규식 선생 일대기·기고문·저서 등 일목요연 전시
1894년~1935년 한인 유학생 34명 자료도 볼 수 있어
‘김규식 센터’는 캠퍼스 입구에 위치한 은행 건물(Bank Building)에 있으며 전시장 입구에는 핑크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쓴 ‘김규식 센터’ 현판도 설치됐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120년 전 미국에서 꿈을 키웠던 한인 선구자들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안내 데스크에 설치된 프롤로그를 읽으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듯 과거의 바로 그 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1882년 5월 한국과 미국은 조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공식 교류를 시작했다. 이후 근대 지식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하는 한인 학생들이 늘어났다. 특히 버지니아에 위치한 로녹대는 일찍이 인종차별을 폐지하고 외국인 학생을 받아들인 대학으로 1894년 첫 한인 유학생을 시작으로 34명이 공부했다. 로녹대를 졸업한 한인 유학생 가운데 한명이 바로 김규식이다. 그는 평생 조국 독립과 민족 통일을 위해 헌신한 한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지난 13일 열린 개관식에는 김규식 선생의 손녀(김수옥)와 증손녀(김신희), 문인석 총영사, 이길현 보훈관, 대한제국공사관 강임산 소장,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과 워싱턴지부 임원들(김조명, 윤흥노, 염영환, 서공열) 그리고 대학 총장과 학장, 담당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커다란 가위를 들고 파란색 리본을 잘랐다. 지구 반대편,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120년전의 만남이 인연이 돼 다시 한자리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는 감동과 환희, 애틋한 마음이 교차했다.
센터 내부에는 김규식 선생의 초상화와 졸업 사진, 임시정부 활동,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단 사진 등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기록돼 있다. 1881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고아가 돼 언더우드 선교사의 도움으로 영어도 배우고 미국 유학도 올 수 있었다. 1903년 로녹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귀국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했다.
로녹대 도서관에는 김규식 선생의 유학 시절 사진과 기고문, 저서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894년부터 1935년까지 로녹대에서 공부했던 34명의 한인 유학생에 대한 자료다. 최초의 한인 유학생 서병규, 헤이그특사 통역을 지원했던 송헌주, 한글 타자기를 만든 이원익,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 등 한국 근대사를 장식한 인물들의 사진과 문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3대 총장을 역임한 줄리어스 드레허(Julius Dreher) 박사는 당시 워싱턴 DC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협력해 한국 학생들을 적극 유치했다. 당시 로녹대 재학생은 대부분 보스턴을 비롯해 뉴잉글랜드 출신 백인들이었으며 아시아계 학생은 없었다. 그럼에도 드레허 총장은 1904년 3월 26일 신문(Boston Evening)에 ‘미국의 한인들’(Koreans in America)이라는 기고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유학생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매우 우수한 학생들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제공된다면 조선의 독립은 물론 일본을 뛰어넘는 국가로 만들 것”이라며 “새로운 문명사회의 여명을 밝힐 리더들”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그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린 숨은 조력자이기도 했다.
한편 ‘김규식 센터’ 건립의 일등공신인 스텔라 슈(Stella Xu) 교수는 “김규식은 한국뿐만 아니라 당시 학교 대표로 토론대회에 나가 수차례 언론을 장식했던 로녹대의 자랑스러운 동문”이라며 “버지니아 정부가 지난 2021년 여론조사를 통해 선정한 역사적 인물로 캠퍼스에 그를 기리는 안내판도 설치됐다”고 소개했다.
또한 그는 “로녹대 학생들은 김규식 동문을 배우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아쉬워하며 “지난해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방문한 로녹대 학생들이 반가운 마음에 김규식에 대해 말했으나 한국 대학생들은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고 해서 놀랐다”고 전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 그들의 삶을 기억하게 한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시간 여행을 떠난다. 지금처럼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타고 올 수도 없던 시절,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버지니아 블루릿지 마운틴을 따라 로녹대에 왔던 그들의 여정을 생각해 본다.
120년 전, 낯선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꿈꿨던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이제 작은 전시관에서 되살아났다. 로녹대는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교가 아니다. 한미 관계의 숨은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로녹대 방문을 권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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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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