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교심매도
▶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파교에서 매화를 찾아나서다) 국립중앙박물관
눈 오는 날 선비님 매화 찾아 나섰네
흰 눈 덮인 계곡은 태고의 적막인데
나무 위에 쌓인 눈 후두둑 떨어지네
눈송이에 매화향기 실려오려나
설중매 찾게 되면 시 한 수 쓰련마는
겨울바람 차가운데 매화 핀 곳 어디인가
미끄러운 다리 앞 나귀는 뒷걸음질
거문고 지고가는 시동은 힘들어라
영조 시대의 문인화가인 현재 심사정은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역모에 연루되어 풍비박산 나는 바람에 평생을 관직에 나설 수 없어 그림을 그려 팔아 가난하게 살았다. 어렸을 때 겸재 정선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는데, 그의 산수화는 고사(故事)를 떠올리는 관념적 산수화에 진경산수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었다.
파교심매도는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이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 시동을 데리고 고고하게 핀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섰다는 고사를 그린 것이다. 단순히 눈 속에 핀 매화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선비의 지조를 찾아 나선 길일 것이다. 맹호연의 고사는 예로부터 많은 선비와 화가들의 시와 그림에서 소재가 되었다. 파교는 중국 장안(長安) 동쪽의 파수 위에 있던 다리로 선비의 고결한 지조와 은일(隱逸)의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심사정이 60세일 때 그린 것으로, 눈 덮인 겨울날 설중매(雪中梅)를 찾아 나귀 타고 길 떠난 선비와 시동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겁이 많은 나귀는 좁은 다리에 눈이 쌓여 얼어 있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뒷걸음친다. 그 뒤를 따라가는 시동(侍童)도 무거운 거문고와 선비의 짐을 어깨에 가득 메고 가며 힘들어하고 있다. 이 그림은 눈덮인 깊은 산과 큰 나무들을 놀라운 세밀함으로 원숙하게 그렸으며 특히 나귀의 겁먹은 모습이 사실감 있게 표현되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사동의 짐과 나귀의 안장, 다리 건너 소나무 줄기가 주홍색으로 채색되어 흑백의 설경 그림에 활기를 더해 준다는 것이다. 또한 다리 밑 계곡물이 흐르는 옆의 키 작은 연분홍 꽃나무는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색채의 절제와 강조를 통해 시각적 리듬을 조율하는 심사정의 회화적 감각은 참으로 탁월하다고 하겠다.
청나라의 황신(黃愼)이 그린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 역시 이 그림과 정서가 비슷한데, 다음과 같은 화제시가 쓰여있다.
騎驢踏雪爲詩探(기려답설위시탐)
당나귀 타고 눈밭 밟으며 시를 찾고
送盡春風酒一담(송진춘풍주일담)
봄바람 다 보내고 한 항아리 술을 마시네
獨有梅花知我意(독유매화지아의)
오직 매화만이 내 뜻을 아니
冷香猶可較江南(냉향유가교강남)
차가운 향기가 오히려 강남보다 나으리라
퇴계 이황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매화를 사랑해서 매화에 관한 시가 수십 편이 전해온다. 필자의 이웃 동네에 사는 오요한 시인의 집 뜰에는 오래된 홍매(紅梅)와 청매(靑梅) 나무가 있는데, 늦은 2월, 매화가 필 때 되면 매화 보러 오라는 연락을 하신다. 물론 나귀가 없어 차를 타고 가지만, 마음만은 그림 속의 선비와 다르지 않다. 청매화의 청초한 모습과 그윽한 향기는 마음을 정화(淨化)시켜 주며, 매화 구경 후 시인 내외가 대접해주는 녹두전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이 맛있다.
<서불진언 언불진의 성인입상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 聖人立象盡意)>라는 말이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 있다. 이는 ‘글로서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쓸 수 없고, 말로는 마음속의 참뜻을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성인은 형상을 세워 뜻을 다한다’는 공자의 말씀이다.
그러나 매화 향기는 그림으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하나! <화불진향(畵不盡香)>이라고나 할까?
<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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