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만에 집에 돌아오니 엉덩이가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다. 마치 한국에서 미국으로 앉은 채 옮겨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당을 쓸었다. 일상으로 돌아오기에 청소만 한 게 없지 싶어서다. 앞마당과 집 밖 우편함 주변으로 정성껏 비질했다. 마치 여긴 내 구역입니다, 하는 마음으로. 내 안부를 묻곤 했다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 이제 돌아왔어요, 알아차리게 할 양으로. 뒷마당 감나무 주변으로 수북한 석양 머금은 낙엽들은 완전히 퇴색할 때까지 두기로 했다. 올해 단 한 알의 감도 맺지 않았지만 봄과 여름 내내 푸른 잎 그늘과 빛을 안겨주었다.
김치를 담갔다. 곧 올 새해에 식구들과 떡국이라도 먹으려면 적당하게 익은 김치가 필요하다. 맛이 있건 없건 김치는 직접 담가 먹으려고 한다. 먼 길 떠날 때 김치 한 통 만들어 두고 가면 유용하다. 남은 무 하나는 무말랭이로 만들려고 썰어서 체에 널어둔다.
일기예보 비 소식에 마당 화분들을 정리하는 동안 남편은 지붕과 발코니에 쌓인 솔잎들을 쓸어내고 비 샐 만한 틈새를 살피고 조치를 했다. 비 새지 않는 지붕 아래 잠들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불만큼 물도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연초에 팰리세이즈 불난리 때문에 가슴 쓸어내린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하루치 노동을 끝낸 후, 찡하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배드민턴 세계 랭킹 1위인 안세영 선수의 녹화 경기를 보았다. ‘셔틀콕(배드민턴) 여제’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팀 안세영 선수가 항저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최종전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켜내며 우승했다. 단일 시즌 최다우승 11회를 달성하여 11관왕이 되었다.
몇 년 전 넷플릭스에서 배드민턴 관련 드라마 ‘라켓소년단’을 정주행한 후로 우리 부부는 배드민턴과 안세영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드라마 속 셔틀콕 천재 소녀가 안세영 선수를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해서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만이 결과로 받을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올여름 일본 오픈 우승 후,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은 매일매일 얼마나 연습 또 연습하며 노력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명언이었고 그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태도가 실력이 된다’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셔틀콕 여제, 질식수비, 자신만의 경기를 일관되게 하는 정신력 강한 선수, 기술과 능력, 총명함을 갖춘 단식 최강자 등의 수식어에 밴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녀처럼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집에 돌아온 나는,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흥얼거리며 낙엽을 쓸어 담는다. 두 다리와 팔이 속삭이는 것 같다. 이제 집에 왔구나.
내일이면 바람이 불어 쓸어내야 할 것들이 쌓일 것이고 다시 빗자루를 잡을 것이다. 하루하루 비질을 하는 마음으로, 대단히 기쁘거나 대단히 슬픈 일 없이도 그럭저럭 잘 지낸 일상에 감사하며. 2025년을 떠나보내는 모두의 마음이 그럭저럭 행복하셨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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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라 수필가 미주문협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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