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초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자화상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그림 중 하나다.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뒤러는 생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그가 유화로 그린 자화상은 3점이 남아 있는데 그중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이 가장 유명하다. 정면을 바라보는 화가의 모습이 화면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검은 배경 면에는 황금색으로 쓰인 글씨가 새겨져 있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화가의 얼굴 바로 옆 한편에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영원한 색채로 나 자신을 그렸다”는 문장을 배치하고 다른 편에는 그림이 제작된 해 ‘1500년’과 그의 이름 머리글자를 딴 ‘AD’를 표기했다.
이 그림 속에서 당당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화가의 나이는 28세에 불과하다. 당시 관점에서는 청년에서 성숙한 인생 단계로 넘어가는 나이에 해당하지만 그럼에도 젊은 화가의 모습치고는 너무나 장엄하고 강렬하다. 완전한 정면 자세를 취하고 있는 화가의 얼굴이 중세 기독교 성상화에 등장하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불경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관람자와 시선을 마주하는 인물 구도와 축성을 하듯 가슴에 손을 올린 자세, 그리고 어두운 톤의 색채 사용 등이 전통적인 종교화 제작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사실 이 작품에서 표출되고 있는 신비주의적이고 초연한 분위기는 전적으로 작가가 의도한 바다.
뒤러는 1500년이라는 시점을 매우 중요하게 인식한 듯하다. 그는 이해가 새로운 시대의 출발선이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구원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자화상은 창조자로서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작가의 열망을 대변한다고 해석된다. 창조하는 작업은 기술이 아니라 신성에 가까운 것이며 신이 그랬듯이 예술가도 세상에 무한한 기쁨을 주는 존재임을 뒤러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그림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줄곧 그의 작업실에 보관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스로에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문하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신상철 /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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