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하나로 만나, 뿌린 듯 꽃들을 이 들에 피웠다’라고 노래했던 도종환 시인의 인연이 마음을 스치는 계절이다.
어느 날 늦은 오후에 자전거를 탄 세 한국 청년이 집 마당에 들어섰다.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마당 한쪽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고 떠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오리건주에서 동부 뉴욕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이 청년들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체구였고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이었다. 그들을 마당에 재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마침 빈방이 있어서 그리로 안내했다. 그들은 매우 고마워했다.
그날 저녁 자전거 여행에 관한 이야기로 밤이 늦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이 청년들은 미국을 몸으로 체험할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고 했다. 힘들겠지만 잘 견디며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세 청년은 자전거를 점검하고 떠날 채비를 차렸다. 따끈한 국물과 함께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집을 나서는 모습은 출전을 앞둔 결연한 운동선수 같았다.
꼭 완주에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뒤로한 채 세 청년은 훌훌히 떠났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집을 떠나 객지로 유학 가는 아들을 전송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자고 나간 이층 방에는 청년들의 체온이 한동안 남았다. 그날 이후 두어 달 동안 일기 예보를 주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혹시 도중에 태풍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세 청년이 지나갈 도로는 안전할까? 그해 가을까지 매일 마음이 쓰였다.
예정대로 뉴욕까지 무사히 도착했는지 소식을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문득문득 세 청년이 떠 오르곤 했다. 한 청년은 얼굴이 귀공자같이 고와 그 긴 여정을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의 모습과 속 사람의 의지는 달라 어쩌면 더 강인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반년쯤 지난 후 한국에서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미국 자전거 횡단을 다녀온 청년 중 한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오리건을 떠나기 전에 편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어 너무나 고마웠다는 인사를 보내왔다. 세 사람의 일행 중 한 청년은 도중에 몸이 편치 못하여 포기하고 귀국했다는 사연도 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무사히 예정대로 뉴욕에 잘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오리건에 방문하고 싶고 잠자리를 제공했던 그 방에서 다시 며칠 간이라도 지내고 싶다는 내용도 적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이후 십여 년이 지났지만 그것이 마지막 소식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랫동안 그 여운은 떠나지 않았다. 만남과 헤어짐이 주는 큰 선물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자전거 청년과 짧은 만남은 긴 인연의 꼬리를 남겼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가까이는 가족과 친척, 이웃과 친구, 더 나아가 낯선 이와 잠시 만난 인연까지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새로운 인연이 가져다 줄 또 하루의 풍요한 선물을 기대하는 새 하루이다. 풀 씨 하나가 온 들을 꽃밭으로 만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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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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